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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고령화 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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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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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늦은 밤 택시를 탔다. 행선지를 말하며 고개를 돌려 보니 적어도 70대 후반, 많게는 8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르신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 운전석이 바짝 앞으로 당겨져 있다. 단단히 운전대를 잡은 두 손이 오히려 불안해 보인다. 심야의 택시답지 않은 속도인데도 멈칫멈칫하는 때가 많다. 차로 변경을 하는 순간 뒤편에서 신경질적 리듬을 실은 경적 소리가 들려온다. 차와 나의 옆구리가 동시에 들이받힐 뻔했음을 알아챈다. 오른손이 유리창 위 손잡이로 슬며시 옮겨 간다. 졸음기가 싹 달아나고 몸은 팽팽한 긴장 모드로 돌입한다.

 이왕 말똥말똥한 상태가 됐으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짐작건대 이 어르신은 1990년대 중후반의 대규모 실직 사태 때 또는 그 이후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아니면 빼앗기고) 길 위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치킨집이나 피자집을 하다가 본전 날리고 환갑 지나서 더 험한 일에 뛰어들었는지도 모른다. 운전대를 놓으면 한 달에 많게는 20만원의 노령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생계유지가 어렵다. 이 어르신은 몸이 버티지 못하는 순간까지 주행을 멈추지 않으리라(또는 못하리라).

 통계를 보니 서울의 택시기사 8만7358명 중 70세 이상 고령자가 6832명(지난해 말 기준)으로 7.82%다. 열세 번 택시를 타면 그중 한 번은 70세 이상이 운전하는 차를 타게 된다는 얘기다. 2010년에는 그 수가 3217명이었다. 4년 사이에 배 이상이 늘었다. 젊은층의 택시 운전 기피, 고령화, 낮은 복지 수준을 감안하면 이 비율은 계속 높아질 것으로 봐야 한다.

 택시만 고령화 물결에 휩쓸린 것은 아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경찰에 접수된 65세 이상의 운전자가 낸 사고 건수는 1992년 1008건에서 지난해 2만275건으로 20배로 불어났다. 그만큼 노인 운전자가 많아졌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정부는 고령자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적성검사 강화, 운전면허 자진 반납 유도 등의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시도한 일들이다. 일본은 택시비 보조를 조건으로 면허 반납을 유도했는데 실효성이 없었다. 운전을 안 하는 면허 소지자들이 주로 응했다.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대책은 자동 장애물 감지·제동 장치 같은 신기술의 보편화다. 더 나아가서는 무인 또는 로봇 운전 자동차의 대량 보급인데 그렇게 되면 고령자 택시기사들 처지는 더욱 막막해진다. 불현듯 닥쳐온 이 고령화 시대는 해결 난망인 과제를 끊임없이 던진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