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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꼬마살인, 그리고 식칼과 악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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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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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실종 하루 만에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서울 남산 중턱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금전관계로 아이의 아버지와 갈등을 빚던 삼촌과 흉사를 예언한 먼 친척뻘 무당, 그리고 부모까지 용의선상에 올렸다. 잡고 보니 일면식도 없는 만 10세 가출소녀 조모양이 범인이었다. 술에 취하면 도끼를 휘두르고 매질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집을 나온 조양은 “머리카락을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자신보다 어린 여자애의 머리카락을 자르려다 우발적으로 살인한 것이다.

 1966년에 벌어진 이 사건은 형사책임 없는 어린이가 저지른 국내 최초의 살인으로 기록됐다. 꼬마살인범의 등장에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소년법을 적용받는 촉법소년 연령조차 만 12~14세(현 만 10~14세)였기에 조양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죄를 짓고 벌을 받지 않았으니 운이 좋은 걸까. 사건 전개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조양 부모는 “그런 자식은 없는 게 낫다”며 딸을 거부했고, 경찰은 부랑아를 임시 수용하는 아동보호소에 넘겼다. “정신치료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서울시립중부병원에 입원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돌아가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조양을 한 달 만에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4개월 뒤, 피살된 여자아이의 어머니와 이모 등이 조양 집에 들이닥쳐 식칼과 가위로 조양의 머리카락을 마구 잘랐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적 응징에 나선 것이다.

 아파트 앞에서 고양이를 돌보던 한 중년 여성이 떨어진 벽돌에 맞아 숨진 이른바 ‘캣맘 사건’ 범인 역시 형사상 처벌은 물론 소년법상 보호처분 대상도 아닌 만 10세 미만의 초등생이었다. 일부에서는 “단순 사고가 아닌 명백한 범죄”라며 이참에 형사처벌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검토할 만한 주장이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린 초등생을 대상으로 마구잡이 신상털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구글·네이버 같은 포털 검색창에 ‘캣맘’이라고 치면 ‘캣맘 초등학생 신상’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자동 완성된다. 클릭해 보면 무슨 학교 누구로 범위가 좁혀졌느니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악플을 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법적으로도 처벌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두고 50년 전엔 피해자 가족이 식칼을 들고 직접 달려왔다면 지금은 익명성 뒤에 숨은 불특정 다수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의 아픔 못지않게 이 모든 걸 평생 짊어져야 할 가해 아동의 고통도 참 안타깝다.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