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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83> 케이블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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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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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기자

서울 남산에 오를 때 한 번쯤 타봤을 케이블카(cable car), 그 케이블카가 요즘 뜨겁습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앞다퉈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까닭입니다. 특히 올 8월에는 설악산 오색약수터와 끝청을 잇는 ‘오색 케이블카’가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사업 승인을 받았습니다. 강원도 양양군이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한 지 꼭 20년 만입니다.

환경 파괴 vs 관광객 유치 … 케이블카, 한국 45개 스위스 2500개

케이블카는 한자말로 ‘가공삭도(架空索道)’로 불립니다. 공중에 매단 밧줄을 뜻하지요. 줄임말이 ‘삭도’여서 국내 케이블카 업체들이 모인 단체 이름이 한국삭도협회입니다. 즉 케이블카는 ‘공중에 건너지른 강철밧줄에 운반기를 매달아 사람이나 짐을 나르는 교통수단’입니다. 곤돌라(소형 케이블카)나 스키장 리프트도 넓은 범위에선 케이블카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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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5월 개통된 한국 최초의 케이블카인 서울 남산케이블카(사진 왼쪽)는 누적 탑승인원이 1700만 명에 이른다. 국내 최초의 해상 케이블카인 전남 여수해상케이블카는 지난해 12월 개통 이후 9개월 만에 매출 200억원을 벌어들였다. [중앙포토]

 국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케이블카는 아무래도 남산케이블카일 겁니다. 한국 최초의 케이블카인 남산케이블카는 1962년 5월12일 운행을 시작해 반세기가 넘도록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요. 손님은 한 번에 31명이 탈 수 있었는데 안내원 1명이 동승했습니다. 좌석이 4개뿐이어서 대부분 서서 서울시내 전경과 멀리 굽이쳐 흐르는 한강을 감상할 수 있었지요.

서울 회현동 승강장에서 남산 중턱까지 605m. 지금까지 1700만 여명에 이르는 연인과 친구, 가족이 이 삭도를 타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았습니다. 1980~90년대에는 지방 학생들의 서울 수학여행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구경거리이기도 했습니다. 남산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 전국에 케이블카가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답니다. 부산 금정산, 대구 팔공산, 원주 치악산, 대전 대둔산, 전북 덕유산…. 명산과 명승지에 생겨난 케이블카는 총 45개입니다. 이 중 관광용이 21곳, 스키용이 18곳이고 나머지는 화물용 또는 방송총국 전용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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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카의 천국은 단연 스위스입니다. 스위스는 산지 면적이 강원도보다 작지만 케이블카 2500개가 나라 곳곳에 설치돼 있지요. 그 덕에 3000m대 알프스 고봉을 노약자·장애인·어린이도 누구나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습니다. 알프스 마터호른 인근의 체르마트 마을이 대표적입니다. 해발 1620m에 있는 체르마트 마을은 3089m에 달하는 산악열차와 3883m의 유럽 최고 높이 케이블카 등 운송 수단을 운영하면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지요.

정상에 5성급 리조트와 호텔, 레스토랑 등이 생겼고, 인구 6000여 명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 연간 13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인접한 독일 뵈리스호펜 마을은 인구가 1만 5000여 명에 불과하지만 매년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한답니다. 케이블카로 산 곳곳을 다닐 수 있게 하면서도 산림욕장으로 명성을 떨칠 정도로 산림 보존에 힘쓴 결과입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열린 캐나다 휘슬러 리조트에는 새 명물이 된 곤돌라 ‘피크투피크(Peak 2 peak)’가 있습니다. 이름처럼 2000m가 넘는 휘슬러산과 블랙콤산의 두 정상 사이 4.4㎞를 잇는 가장 높은 고도의 케이블카이지요. 눈부신 설원과 고공의 아찔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는 역시 뭐든 큰 것을 선호하는 중국에 있습니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됐던 장자제(張家界)의 케이블카는 장장 7455m에 이릅니다. 그것도 장자제 도심에서 톈먼산(天門山)의 1280m 높이까지 이어집니다. 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남미 볼리비아에 있답니다. 2013년 5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와 엘 알토를 잇는 케이블카는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대에 개통됐습니다. 투자비만 약 2억3400만 달러(약 2594억원) 들어갔지요. 한 번 타는데 40센트로 버스(35센트)보다 비싸지만, 버스가 30분이 걸리는데 반해 케이블카는 10분이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지하철 또는 광역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을 케이블카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 때문에 개통 1년 만에 이용자만 500만 명이 넘어설 정도입니다.

 외국의 각종 모범사례를 벤치마킹한 한국 지방자치단체들도 케이블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지리산 권역의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 전남 구례군, 전북 남원시 등 전국 10여 곳에서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환경단체와 진보계열 인사들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케이블카의 전국화(化)’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사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정부가 20년 넘게 고수한 ‘국립공원 케이블카 불허 방침’을 스스로 해제한 조치였습니다. 1990년 덕유산 무주리조트 이후 국립공원에는 더 이상 케이블카를 만들지 않았지요. 더군다나 환경단체의 주장대로 오색케이블카는 자연훼손, 경제성 부족 등의 이유로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나 부결된 사업입니다. 이에 양양군은 기존 등산로를 피하면서 산양 서식지를 훼손하지 않는 ‘대안 노선’을 마련해 세 번째 시도 끝에 조건부 승인을 받았습니다. 총 20명의 위원 가운데 17명이 표결에 참여했고 12명이 조건부 가결에 표를 던졌습니다. 4명은 결정 유보, 1명은 기권했습니다.

사업 승인을 해주는 대신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운영수익의 15% 또는 매출의 5%를 설악산 환경보전 기금으로 조성 ▶멸종위기종 보호 대책 수립 ▶탐방로와 케이블카 연계 불가 등 7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대청봉에 이르는 정상부 통제가 불가능하고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의 서식지 훼손이 자명하며 이번 3차 사업계획서 역시 지난 1·2차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지요.

 양양군이 두 차례 낙방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카 설치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서두에 설명했듯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 때문입니다. 양양군은 이번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로 연간 1520억원가량의 경제 효과가 생길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건설사업으로 총 1309억원, 케이블카 운영으로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총 215억원입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경제성 평가 보고서에서도 설악산 케이블카의 비용편익(B/C) 분석은 1.14로 나왔습니다. B/C가 1보다 크거나 같으면 사업성이 있다는 뜻이지요.

 캐나다 밴쿠버의 사례도 강원도와 양양군이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논리로 작용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따른 외국인 관광 특수로 설악-금강권 관광벨트 조성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양양군 측은 “케이블카 설치로 설악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면 경제 효과도 크지만 노약자나 장애인 등 등산이 불가능한 사람에게도 국립공원의 자연경관을 감상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환경단체를 비롯한 진보 인사들의 거센 반발을 넘어서는 일은 풀기 어려운 숙제입니다. 43개 시민·환경단체·종교계 인사들로 구성된 설악산케이블카 범대책위원회는 오색 케이블카 사업 승인이 원천 무효라는 행정 소송을 냈습니다. 설악산을 시작으로 해서 케이블카 건립이 전국 명산에 도미노처럼 나타날 것이고 환경파괴는 불 보듯 뻔해진다는 논리입니다.

한 환경단체 운동가는 “국립공원,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5개 보호구역이 중복 지정된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서게 되었으니 다른 지역이 가만있을 리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한산악연맹이 회원 16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64.8%가 반대의사를 밝혔습니다. 국립공원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미국의 경우 국립공원에 설치된 케이블카가 전혀 없다는 점도 반대 측의 논거입니다. 국립공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개발이 아니라 ‘보전’에 절대적인 비중을 둬야 한다는 뜻이지요.

 다만 낙후된 지역 경제를 살려보겠다는 지자체의 요구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전라남도 여수시 해상 케이블카는 지난해 12월 개통 이후 9개월 만에 매출 220억원을 벌었습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가로질러 시설된 이 케이블카는 8인승 40대와 함께 바닥을 투명유리로 설치한 6인승 10대를 시속 5㎞로 왕복 20분에 걸쳐 운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총 사업비 320억원을 들인 케이블카 건립 투자비도 수년 안에 회수할 수 있답니다. 2008년 개장한 경남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는 지난 7월 누적이용객 900만 명을 넘어서고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고 있습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케이블카 사업이 확대될수록 ‘환경 대(對) 개발’의 이분법적 논란 또한 더욱 심해질 전망이라는 것입니다. ‘천성산 도롱뇽 사태’와 같은 소모적 갈등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지만 세계 각국은 자연 보호와 관광객 유치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골몰하고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케이블카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면 인간의 발자국보다 오히려 환경 파괴도 줄이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웃나라 일본에도 29개 국립공원에 40여 개의 케이블카가 있습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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