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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84> 우리 교과서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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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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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권 기자

10월 5일은 ‘교과서의 날’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문교부가 최초로 제작한 교과서 『국어 1-1』 발행을 기념해 지정된 날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철수와 영이’입니다. 어릴 적 동심을 떠올리게 해주는 교과서는 때론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세종시 교과서박물관에 소장된 교과서들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과서 변천사를 소개합니다.

승공·국민교육헌장 … 그 시절 교과서 생각나시나요

조선시대 『동몽선습』 첫 아동용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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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교과서박물관에 꾸며져 있는 1960~70년대 겨울 초등학교 교실 풍경. 중앙에 놓인 난로 위에 도시락이 포개져 있다. 교실 앞쪽엔 선생님이 음악과 산수 시간에 사용한 풍금과 대형 주판알이 놓여 있다. 오른편엔 시간표와 교가 악보도 보인다. [사진 교과서박물관]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성균관과 향교, 그리고 서당이었다. 교과서를 ‘배움을 익히는 책’으로 정의할 경우 서당에서 배우던 대표적 교재인 『동몽선습』(童蒙先習·1541년)이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용 교과서라 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유학자 박세무가 도덕과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이 책은 서당에 들어간 아이들이 『천자문』을 익히고 난 다음 단계에서 배우는 초급 교재로 쓰였다. 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동몽선습』을 익힌 아이들은 『소학』(小學)을 배웠다. 일상 생활의 예의범절과 자기 수양을 위한 격언을 담은 이 책은 과거 대비용인 『사서삼경』 등을 배우기 위한 필수 교재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충효 사상을 중심으로 유교적 윤리관을 중시한 교재가 주로 쓰였다.

 개화기(1890~1910)로 넘어오면서 ‘교과서’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됐다. 1895년 고종이 지금의 교육부 격인 ‘학부’를 설립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국정 교과서인 『국민소학독본』이 발행됐다. 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로 총 72장 144쪽 분량의 단행본이다.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한 이 책은 장문체에 띄어쓰기가 없는 게 특징이다. 전문주 교과서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개화기에 새로운 선진문물에 대한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과서”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일제에 의해 1910년 11월 발매 금지 조치를 당했다.

 1896년 학부가 발행한 국어 교과서 『신정심상소학』에는 최초의 삽화가 그려졌다. 하지만 개화기를 거치며 일본인들이 교과서 편찬 작업을 주도하면서 67개 삽화 중 절반 이상이 일본의 풍물을 소개하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엔 실질적인 교육행정 권한이 일본인들에게 넘어갔다. 1907년 교과서 검정제가 도입되면서 민간이 발행하던 국민교육도서는 사라지고 일본인들의 구미에 맞는 친일 교과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10년엔 20만 권이 넘는 교과서가 일본인들에 의해 압수돼 불태워졌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어가 ‘국어’로 사용됐던 암울한 시기다. 모든 교과용 도서가 일본어로 편찬됐다. 『국어독본』이 대표적이다. 『국어독본』은 당시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서 배우던 교과서로 1931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했다. 이때는 독본 외에 읽기·쓰기·글짓기 등 일본어 교육이 강조된 시기다. 우리말과 글은 『조선어독본』으로 배웠지만 이마저도 선택 과목으로 바뀌었다. 내용도 한국사를 부정하고 한국인을 우민화·열등화·일본인화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1948년 교과서에 등장한 ‘철수와 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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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개화기인 1896년 최초로 교과서에 그림을 넣어 제작한 『신정심상소학』, 조선총독부가 1935년 우리 글을 가르치기 위해 발행한 『조선어독본』, 광복 후 첫 교과서인 『국어 1-1 바둑이와 철수』. 1948년 10월 발행됐다.

 1945년 광복 이후 교과서는 잊혀진 한글 교육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국어 보급과 국문 교육에 역점을 두고 문맹 퇴치 운동이 시작됐다.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초등학교는 9월 24일, 중등학교는 10월 1일에 교과서 한 권 없이 교실문을 열었다. 이후 11월이 돼서야 군정청 학무국에서 『한글 첫걸음』이란 국어 교과서를 발행했다.

 『한글 첫걸음』은 한글 교육을 위해 초·중·고교 공통 교재로 사용했던 국어 교과서다. 1946년엔 조선어학회에서 『국어 교본』을 발행해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로 사용했다. 광복 이후 최초의 역사 교과서인 『국사교본』도 이때 편찬됐다. 한글 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초등글씨 교본』도 글씨 연습용으로 발행됐다. 1948년엔 『농사짓기』 등 농사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설명하는 이색 교과서도 나왔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그해 10월 문교부는 『국어 1-1 바둑이와 철수』를 발행했다. 철수와 영이의 대화가 이어지는 최초의 스토리텔링식 교과서였다. ‘영이 야, 이것 이 무슨 꽃 인지 아니?’처럼 명사와 조사를 일일이 띄어쓰기한 것도 특징이다. 뒤이어 공민·역사·지리·음악 등 54종의 교과서가 발행됐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문교부는 1951년 학생들의 전시 생활 지도를 위한 임시 교재를 만들어 보급했다. 전쟁에 동원된 비행기와 탱크·군함 등이 교과서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물자가 부족한 시기라 교과서 크기도 지금의 절반 크기에 불과했고 종이도 유엔 한국재건위원단 등의 원조를 받아 썼다. 『국어 6-3』의 ‘-3’은 종이를 원조받은 횟수를 의미했다.

무장공비 침투 사건 여파 반공 교육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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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6·25전쟁 때인 1951년 초등학교 교재로 나온 『우리나라와 국제연합』, 1951년 전시 생활 안내를 위해 만든 『국군과 유엔군은 어떻게 싸워 왔나』, 호국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1951년 발행한 전시 교재 『우리도 싸운다』.

 전쟁 후 제1차 교육과정기에 들어서면서 초등학교 기본 교과서는 모두 국정으로 바뀌었다.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는 국정과 검·인정이 병행됐다. 교과서 전용 활자기가 도입되면서 인쇄도 선명해졌다. 책 제목에도 순우리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사회는 ‘우리나라의 생활’, 세계사는 ‘이웃나라의 생활’ 등으로 표기했다. 공민·역사·지리교과서는 ‘사회생활과’로 통합 발행했다.

 많은 사람들이 철수와 영이가 60~70년대를 대표하는 교과서 주인공으로 알고 있지만 철수와 영이는 1964년까지만 주인공이었다. 1964~72년엔 인수와 순이, 73~83년엔 기영이와 순이가 주인공이었다.

 제2차 교육과정기(1963~73)엔 울진·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으로 반공 사상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정부는 반공·방첩 교육을 위해 『승공』이란 교과서를 펴냈다. 민주주의를 설명하며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다. 70년 한글 전용으로 개편됐다가 75년 한자 병용을 채택하는 등 여러 차례 정책이 바뀌기도 했다.

 1968년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교육헌장을 발표했다. 초등학교 1·2학년용 국민교육헌장이 그림책으로 편찬됐고 3~6학년용 독본이 발행됐다. 국민교육헌장은 당시 교육 지표로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외워야 했다. 제3차 교육과정기(1973~81)는 국사 교육을 강화한 시기다. 사회과로 편성돼 있던 초등학교 5·6학년 국사를 독립된 교과서로 편찬했다. 검정이었던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도 국정화됐다.

80년대 “책가방을 가볍게” 통합 교과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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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반공 강화 시기에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승공』(左), 1970년대 중학교 교실을 재현한 미니어처. 까까머리에 검은 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도시락을 까먹고 있다(右). [사진 교과서박물관]

 제4차 교육과정기(1981~87)의 가장 큰 특징은 통합 교과서의 등장이다. 당시 정부는 “아이들 가방을 가볍게 하자”는 취지로 공통 요소가 있거나 상호 관련성이 높은 일부 과목을 통합했다. 국어·도덕·사회를 합한 ‘바른생활’, 음악·미술·체육을 통합한 ‘즐거운생활’, 수학·자연을 하나로 묶은 ‘슬기로운생활’ 등이 초등학교 1·2학년용 교과서로 발행됐다.

 제5차 교육과정기(1987~92) 때는 ‘한 교과목 여러 교과서’ 체제가 등장했다. 국어는 읽기, 말하기·듣기, 쓰기 교과서 등으로 세분화됐다. 산수는 셈법의 기본 원리를 배우는 산수와 연습 위주의 산수 익힘책 교과서로 나뉘어졌다. 이를 통해 교과서는 과거 독본 기능에서 학습용 교재와 보조 교과서 기능으로 영역이 확대돼 갔다.

 제6차 교육과정기(1992~97) 때인 96년엔 영어 교과서가 초등학교에 처음 등장했다. 산수는 수학으로 이름을 바꿨다. 저시력 학생들을 위해 일반 교과서의 1.5배 크기인 확대 교과서가 개발되고 점자 교과서도 보급됐다. 학교 교육 과정의 편성·운영에 대한 일선 시·도교육청의 재량권도 확대됐고 학생들을 위한 교양 선택과목도 개설됐다.

 제7차 교육과정기(1997~2007)는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주안점을 뒀다. 교과서 재질을 고급화하고 다양한 편집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초등학교에 이어 중·고등학교용 교과서도 컬러로 인쇄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를 국민 공통 기본교육 기간으로 설정하고 국어·수학·사회·과학·도덕·실과·체육·음악·미술·외국어(영어) 등 10개 과목을 이수하도록 했다. 이후 2007년부터 우리나라 교육 과정은 수시 개정 체제로 바뀌었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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