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미당도 한때 ‘육혈포 거사’ 꿈꾼 열혈청년이었다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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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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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평전
이경철 지음
은행나무, 484쪽
1만9000원

한국 시사(詩史)의 최고 시인 중 한명으로 꼽히는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 그의 평전이다. 생전 미당으로부터 직접 문학수업을 받은 제자인 저자(중앙일보 전 문화부장)가 발품 팔아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썼다.

 미당의 세계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다. 60년 넘게 시를 써 1000편 넘는 다작을 남긴 것도 이례적이지만 평생 시 세계의 변모를 추구했다. 뿐만 아니다. 참여시와 함께 시단을 양분해 온 서정시 진영의 최고봉으로 높은 시적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가다. 티 없이 아름다운 그의 시 구절에 반해 일종의 미학적인 감전(感電) 상태에 빠진 적이 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유종호·김화영 등 당대의 평론가들은 미당 시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쳤다.

 평전은 그런 시를 잉태한 시인의 삶, 그 내면까지 들여다보려고 시도했다. 생전 미당이 스스로의 삶을 회고한 글을 통해서다. 가령 고창고보를 자퇴한 후 당시로는 거금인 아버지 돈 300원을 훔쳐 육혈포(六穴砲)를 장만해 독립운동을 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하고 서울에 주저앉는 바람에 평생 문학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은 글(‘나의 방랑기’, 1940년 )을 인용했다.

 두고두고 오점으로 거론되는 미당의 ‘정치적 과오’도 책은 솔직하게 기록했다. 일제시대 친일 시, 친일보다 더 큰 오류로 지적되곤 하는 1986년 전두환 전 대통령 탄생 축하시 등 5공화국에 협력한 사실을 자세히 적었다. 엄격한 글쓰기다. 그런 영욕을 되짚어 저자가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한시적인 삶과 역사의 굴레쯤 훌쩍 벗어버리고 영원한 아름다움을 꿈꿨던 대시인의 오롯한 얼굴이었을 게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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