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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문 18번홀 아쉬운 ‘뒤땅’ … 그래도 2승1무1패 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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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싱글 매치에서 인터내셔널팀 배상문이 17번 홀 벙커샷이 홀을 지나치자 아쉬워하고 있다. 배상문은 18번 홀 세 번째 샷에서 뒤땅을 치는 실수를 해 아깝게 패했다. [인천=김성룡 기자]

11일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장 18번 홀. 배상문이 그린 주위에서 칩샷을 준비했다. 모든 눈이 배상문과 그의 상대 빌 하스(미국)를 주목했다. 미국팀과 인터내셔널팀이 14.5-14.5로 팽팽한 상태에서 12번째 마지막 매치플레이(두 선수가 홀마다 스코어를 겨루는 경기)였다. 17번 홀까지 1홀을 지고 있던 배상문이 18번 홀을 이기면 둘은 승점 0.5점씩을 나눠 가진다. 지면 하스에게 1점이 넘어간다. 18번 홀 결과에 따라 인터내셔널팀이 비기느냐 지느냐가 달려 있었다.

연합·미국팀 동점서 마지막 매치
빌 하스에 져 1점 차로 우승 내줘
출전 24명 중 최하위 88위지만
쟁쟁한 미국 선수 상대로 2.5점

 배상문은 신중하게, 여러 차례 연습 스윙을 하고 그린의 경사도 직접 보고 왔다. 배상문은 마지막으로 깃발을 흘낏 본 후 스윙을 했다. 공은 그린에 올라가는 듯싶더니 다시 굴러 내려왔다. 뒤땅이었다. 공을 직접 때리지 못하고 뒤의 땅을 친 것이다. 배상문은 머리를 움켜쥐고 풀썩 주저앉았다. 결국 배상문이 마지막 홀에서 패하면서 인터내셔널팀이 한 점 차로 졌다. 1994년 시작돼 격년제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은 미국이 9승 1무 1패로 크게 앞서게 됐다.

 경기는 드라마틱했다. 이날 초반 미국이 싱글매치 12경기 중 10경기를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조금씩 양상이 바뀌었다. 미국의 에이스인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던 마크 레시먼(호주)이 극적으로 경기를 뒤집으면서 양 팀은 14.5-14.5가 됐다. 그러면서 공은 배상문에게 왔다. 미국에서 활동한 배상문은 올해 내내 고생을 했다. 병역법 위반 혐의로 고발을 당한 상태로 경기에 뛰었다. 그는 “탈모가 생기기도 했고 경기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의 세계랭킹은 88위로 출전 선수 중 가장 낮았다. 첫날 경기에 뛰지 못하고 벤치를 지켰다. 그러나 둘째 날부터는 경기를 잘했다. 포볼 경기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뉴질랜드 동포 대니 리를 이끌고 승리를 따냈다. 10일엔 포섬-포볼 경기에 모두 나왔다. 포섬에서는 마지막 홀에서 워터해저드를 가로지르는 공격적인 티샷으로 버디를 잡아 승점 0.5점을 땄다. 포볼 경기에서도 대승을 일궜다.

 전날까지 2승1무로 맹활약한 배상문은 그러나 마지막 날, 마지막 홀 칩샷 뒤땅을 쳤다. 배상문은 대회를 앞두고 “누가 압박감 속에서 강한 정신력을 가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배상문이 압박감 속에서 오래 기억에 남을 실수를 했다.

 배상문의 어머니 시옥희씨는 “모든 부담을 아들이 다 진 것이 안타깝다. 먼저 경기한 인도 선수가 이겨줬으면 아들이 편하게 했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인도의 아니르반 라히리는 마지막 홀 60㎝ 퍼트를 넣지 못해 경기에서 졌다. 이에 앞서 미국의 장타자 버바 왓슨도 18번 홀에서 1m가 안 되는 퍼트를 넣지 못해 승리를 날렸다. 그래도 그들의 실수는 잊혀지고 가장 결정적인 상황에서 나온 배상문의 뒤땅은 남을 것이다. 그는 조만간 입대할 예정이다.

 배상문의 뒤땅 드라마와 함께 프레지던츠컵은 활력을 찾았다. 그동안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인터내셔널팀을 이겼다. 대회를 계속해야 하느냐는 비관론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양 팀이 끝까지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하면서 인기를 회복하게 됐다. 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도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길 때는 흥미가 없다가 팽팽한 승부를 하게 된 후 전 세계를 흥분시키는 빅이벤트가 됐다. 인터내셔널팀 캡틴 닉 프라이스는 “프레지던츠컵이 새로운 생명을 찾았다. 우리는 짜릿한 승부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팀은 경기 초반 홈어드밴티지를 누리지 못했다. 유일한 한국 선수인 배상문을 기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팬들은 인터내셔널팀이 아니라 낯이 익은 조던 스피스, 필 미컬슨 등 미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첫날 인터내셔널은 1-4로 뒤졌다. 둘째 날부터 배상문을 중용하면서 쫓아갔지만 한 점이 부족했다.

 퍼트 부진으로 고전한 애덤 스콧(호주)을 포볼·포섬 4경기에 모두 내보낸 것도 문제로 꼽힌다. 스콧 때문에 제이슨 데이 등 다른 선수들도 상승세를 타지 못했다.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는 2위 제이슨 데이와의 두 차례 대결에서 모두 이겼다.

인천=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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