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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박수를 참고 있을 청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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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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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차이콥스키는 어쩌자고 작곡을 이렇게 했을까. 교향곡 6번 ‘비창’ 얘기다. 3악장에서 현악기가 말 그대로 ‘다다다다’ 음표를 몰아간다. 관악기도 함께 달려간다. 맨 끝에는 모든 악기가 가세해 흥을 낸다. 촌스럽도록 씩씩한 음악은 장대하게 끝나며 이렇게 외치고 있다. “이제 모두 박수 치세요!”

 박수는 칠 수 없다. 클래식 음악회장의 제1규칙이 ‘악장 사이에 박수 치지 말라’다. ‘비창’ 교향곡은 네 악장짜리다. 흥겨워 올라가던 손을 가까스로 부여잡는다. 하지만 PT체조에서 마지막 숫자를 외치는 사람이 꼭 있다. 이 3악장이 끝나면 박수 치는 사람도 반드시 있다. 음악을 아는 애호가들은 눈을 흘긴다. ‘한 악장 더 남았다고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4악장은 더 가관이다. 울며 시작한 음악이 마음 깊은 곳을 긁어낸다. 그런데 가장 마지막 음은 허공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연주하느라 고생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은 청중은 아리송해진다. 도대체 언제 박수를 쳐야 하는가. 이때 눈치 없이 박수를 쳤다가는 ‘마지막 음의 여운을 깼다’는 눈총을 받게 된다. 1악장부터 계속된 40분의 여정을 한순간 망친 사람 취급도 받는다. 차이콥스키는 음악회 초심자를 놀리려고 3·4악장을 이렇게 쓴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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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장 간 박수 금지’란 규칙이 만든 풍경이다. 하지만 음악회장이 엄격해진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8세기 콘서트홀에서는 수다 소리가 음악을 방해했고, 심지어 개들도 뛰어다녔다(『교향곡은 어떻게 클래식의 황제가 되었는가』 최은규 지음). 악장 사이에 박수는 오히려 권장됐다. 쇼팽의 협주곡이 초연될 땐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아예 다른 음악을 끼워 넣어 연주했다.

 본래 청중은 자유로웠다. 음악회장 규칙에 누가 더 익숙한지 뽐낼 일도 없었다. 청중은 연주 중에도 음악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연주자에게도 즉각 반응을 보내줬다. 하지만 현대의 클래식 음악은 많은 교리를 만들어냈다. 작곡가의 일생은 신화화됐고 그들의 초상화는 영웅처럼 그려졌다. 음반 녹음이 발달하면서 음악회 현장에도 엄숙하고 정돈된 분위기가 번졌다.

 클래식 음악회장에서 한껏 위축돼 박수를 참고 있을 청중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음악 듣고 박수를 치고 싶으면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클래식 음악회장에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은 없었다고 말이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