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교육청 또 예산 핑퐁 … 내년 누리과정 스톱 위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8호 8 면

교육부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갈등으로 보육대란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대전의 한 어린이집에서 화재 대피훈련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당장 내년부터 어린이집에 다니는 3~5세는 월 20만~30만원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서로 책임을 미루며 끝장 대립을 하고 있어서다.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아이 130만 명을 대상으로 2013년시작(5세는 2012년)된 공통 교육과정을 말한다. 어린이집·유치원 구분 없이 월 29만원(국공립은 11만원)을 소득에 관계없이 지원한다. 0~2세 어린이집 지원과 더불어 0~5세 무상보육 정책의 양축인 셈이다.


 지난달 15일 정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하는 내용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의 책임이 교육청에 있다는 뜻이다. 이에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창틀이나 기자재를 바꿀 돈도 없어 내년 예산에 반영할 수 없다”며 거부에 나섰다.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어린이집연합회도 단체행동 나설 조짐“무상보육이 아니라 근심보육이다.”


3, 5세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직장맘 박모(37)씨의 말이다. 박씨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불거져나오니 불안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있겠느냐”며 “주변 엄마들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육대란이 발생하는 게 아닌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육아 커뮤니티에는 ‘누리과정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어린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누리과정을 둘러싼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누리과정이 공론화된 2012년부터 교육감들은 관련 예산을 중앙정부(교육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던 중 이듬해 3~4세까지 누리과정을 전격적으로 확대 실시하면서 갈등이 본격화됐다. 2014년 7월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시·도교육감협의회는 국고지원이 없다면 2015년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하며 시위에 나섰다. 다행히 여야가 11월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교육청이 부담하되 2015년 누리과정 지원 확대에 따른 순증분(5046억원)을 교육부의 다른 사업 예산을 증액해 우회적 방법으로 지원하기로 합의하면서 문제가 봉합됐다.


 그러나 임시처방의 효과는 1년을 채 가지 않았다. 이번 갈등은 지난해보다 더 심각하다. 교육부가 누리과정 관련법 시행령 입법예고를 통해 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 의무를 명문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처럼 정부가 우회지원을 할 근거마저 없앤 것이다. 이에 시·도교육감협의회 박재정 사무국장은 “정부가 입법예고를 통해 입장을 밀고 간다면 갈등은 지난해와는 달리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이라며 “교육감들은 예산안 편성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는 것이 명확한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갈등에 학부모의 속만 타들어간다. 김수영(36·여·인천시 서구)씨는 “부모 입장에서는 누구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오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며 “처음부터 제대로 시행하지 못할 거라면 시작하지 말았어야지 국가가 아이를 책임진다고 생색만 내놓고 매번 난리를 치니 불안해 죽겠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입장에서도 분통이 터지기는 마찬가지다. 제주 등 일부 지역 민간어린이집연합회는 “누리과정 예산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국 규모의 휴원 등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아끼면 충분” vs 교육감 “아껴도 빚더미”누리과정 예산 싸움을 이해하려면 교육 예산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교육청은 한 해 살림살이의 70%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충당한다. 지방세와 전년도 이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란 지방자치단체가 교육기관 및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돈을 국가가 세금의 일부(관세를 제외한 내국세의 20.27%)를 떼내 주는 것을 말한다. 경제성장이 둔화돼 세수가 줄면 교부금도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교육감들이 들고 일어난 구조적 원인도 여기에 있다. 매해 평균 3%씩 늘던 교부금이 경기 침체 여파로 올해에는 1조5000억원가량 줄었다. 각 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 부족액을 충당하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전체 교육의 질 저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교육감들의 입장이다. 교육감들은 “누리과정 예산 투입으로 인해 교육환경개선비나 외국어교육비 등이 감소하면서 초·중등교육의 동반 부실화를 촉진하고 있다”며 “어린이집은 교육청 소관이 아닌 만큼 여기에 지원되는 누리과정 예산 2조원은 정부가 별도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부분 교육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올해 누리과정 예산을 일부만 편성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누리과정 1년치 예산인 6000억원 중 57%(3426억원)만 편성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6월 교육부의 지원(목적예비비 575억원·교부금지방채 1377억원)으로 1952억원, 자구노력으로 531억원을 마련해 가까스로 누리과정을 실시하고 있다. 다른 교육청도 사정은 비슷한 상황이다. 이정만 경기도교육청 예산담당서기관은 “도교육청 예산 중 96%가량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경직성 경비이고 가용재원은 4%로 3500억원에 불과한 반면 올해 누리과정 예산은 1조3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 입장은 단호하다. 어린이집 누리과정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이미 법안이 통과된 데다 교육청의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교육부 이보형 지방교육재정과장은 “매해 교육청의 예산 불용액이 4조원이나 된다. 더욱이 학생 수도 줄고 있으니 교육청이 학교 편성과 교원 운용 재정을 효율적으로 해 예산을 절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성 모색하는 대화 필요누리과정 예산 갈등은 정치공방으로 비화·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작심한 듯 정부 비판에 나섰다. 문 대표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내팽개치고 나라 문제를 말할 수 없다”며 “박근혜 정부는 누리과정예산을 전액 국고로 편성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진보 교육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대통령의 간판 공약인데 이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갈등을 ‘진보 교육감 죽이기’라는 이념 논쟁으로 확대시킨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슈로 번지면 해결책은 요원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교부금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일정 부분 중앙정부에서 국고 지원을 해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면서도 “어린이집이 복지부 소관이라서 교육청이 지원을 하지 못하겠다는 교육감들의 주장은 보육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현실에서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대립과 갈등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학부모들이라는 인식을 교육부와 교육감들이 공유하고 갈등의 간극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