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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비즈니스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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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8 면

버버리 프로섬

모즈룩과 펑크룩의 발상지이자 맞춤 신사복의 심장부 섀빌로 거리가 있는 곳, 런던. 하지만 현재 런던은 4대 컬렉션이 열리는 파리·밀라노·뉴욕에 비해 패션 산업의 영향력이 가장 약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세계적인 디자인학교 센트럴 세인트 마틴은 존 갈리아노, 고 알렉산더 맥퀸, 피비 필로, 스텔라 매카트니 같은 걸출한 디자이너를 배출했지만 자국 패션 시장의 약화로 모두 다른 나라 패션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로 빼앗겼다. 영국 출신의 뛰어난 디자이너는 있지만 세계적인 영국 브랜드는 없는 상태다.


영국패션협회는 이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1년에 두 번 열리는 런던패션위크를 교두보로 삼았다. 국적 불문하고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을 시작한 신인 디자이너를 선발, 이들이 창작활동과 비즈니스 양면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도록 무대를 오픈하고 재정 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재기발랄한 브랜드를 찾으려는 전 세계 바이어들의 관심은 요즘 런던으로 쏠리고 있다. 젊은 패션 에너지가 들끓는 현장을 지난달 18일부터 22일까지 중앙SUNDAY S매거진이 훑고 왔다.


내년도 봄여름 시즌 패션 트렌드를 제시하는 ‘2016 런던패션위크’가 올해는 개최 장소를 소호 지역 브루어 스트리트에 있는 카 파크(car park)로 옮겼다. 캐롤라인 러시 영국패션협회 CEO는 “영국 패션 시장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또 한 번의 도약”이라며 “런던 패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본드·도버·옥스퍼드·리젠트·카나비 스트리트에서 1.6km 이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바이어와 미디어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고, 런던 시민들이 함께 패션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위크 기간 중 주변 상권을 활성화한다는 전략도 숨어 있다.


행사는 카 파크의 두 개 층에서 열렸다. 한 층에선 1시간 간격으로 디자이너들의 캣워크 쇼가 이어졌다. 다른 한 층에선 전 세계에서 선정된 100여 명의 디자이너가 바이어와 기자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디자이너 쇼룸을 운영했다. 신인 디자이너의 패기가 느껴지는 ‘뉴젠’ 프로젝트 코너도 흥미진진했다.

신인 디자이너 육성 산실, ‘뉴젠’ 프로젝트 1993년 시작된 ‘뉴젠(뉴 제너레이션 어워드)’은 영국패션협회가 매년 신인 디자이너를 발굴해 쇼 무대는 물론 후원금까지 지원하는 스폰서십 프로젝트다. 패션 에디터, 비즈니스 전략가, 백화점과 편집숍의 바이어, 소매상, 온라인 에디터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뉴젠 위원회는 디자이너 개별성에 맞춰 실질적인 조언과 교육을 담당한다. 또 4대 패션위크가 마무리되는 파리에서 전 세계 바이어들이 최종 바잉을 결정한다는 점에 주목, 현지에서 직접 ‘런던 쇼룸’도 진행한다. 인지도와 인프라가 부족한 신인 디자이너들로선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 바이어들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현재 패션계 차세대 그룹으로 평가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케인, 조나단 샌더스, 록산다 일린칙, 마리 콰트란주, 시몬느 로카, 토마스 테이트 등이 뉴젠을 통해 배출된 디자이너들이다.


유명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뉴젠 위원회 사라 무어 회장은 “초기 단계부터 디자이너들과 만나 그들의 비전에 귀 기울이고 톱 숍(Top Shop·2001년부터 뉴젠을 지원하고 있는 스폰서)과 함께 그들이 상업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뉴젠은 9명의 신인 디자이너를 선정했다. 이중 손으로 직접 프린팅한 원단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표현한 클레어 바로, 데님과 주름치마라는 평범한 길거리 패션을 ‘벽을 뚫고 나온 모델’이라는 독특한 아트 형태로 보여준 퍼스틴 스타인메츠, ‘핑크색과 그에 맞는 패브릭’이라는 주제로 연극의 한 장면처럼 무대를 꾸민 몰리 고다르, ‘흐린 핑크+하늘색+활기찬 녹색’의 묘한 조합을 보여준 다니엘 로메리, ‘정신병원’이라는 기묘한 공간에서 영감을 얻어 독특한 커팅과 실루엣을 보여준 마르타 야쿠보스키 등이 기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미리 꼽은 2016년 봄여름 패션 키워드 7기성 디자이너들 또한 신선한 충격으로 내년 봄여름 시즌 트렌드를 제시했다. 다음은 중앙SUNDAY가 런던패션위크에서 찾아낸 2016년 봄여름 패션 키워드.


1 봄이지만 검정검정을 주요 색으로 잡은 이들이 많았다. 사실 검정만큼 계절과 상관없이 다양한 분위기 연출이 가능한 색깔도 없다. 금색실로 포인트를 준 검정 재킷과 망토를 사용해 우아하면서도 캐주얼한 스타일을 보여준, 섹시하면서도 반항적인 분위기의 의상을 선보인 베르수스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의 나일론 소재 배낭은 여성의 마음을 꽤나 설레게 할 것 같다.


2 포인트 컬러는 노랑·오렌지·하늘색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검정·흰색 등의 단색 의상을 돋보이게 하는 포인트 컬러로 밝은 노랑과 오렌지, 그리고 하늘색을 주로 사용했다.


3 경쾌한 분위기의 사선 스트라이프 여름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가로줄 대신 사선으로 뻗은 스트라이프를 이용해 역동적 이미지를 살린 조나단 샌더스, 가느다란 핀 스타라이프를 이용해 스커트의 날씬함을 돋보이게 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 피터 필로토의 의상 등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4 통이 좁고 긴 슬릿 스커트로 섹시하게 내년 봄 유행할 스커트는 스파게티 면발처럼 길고 통이 좁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걷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다. 옆 라인에 길게 트임을 준 슬릿 디자인이 대부분이었는데, 활동성과 트임 길이의 정도에 따라 다리가 많이 드러나는 섹시함이 특징이다.


5 잔주름, 퍼프소매, 끈 장식으로 여성스러움을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이 즐겨 입는 브랜드 에밀리아 윅스테드는 단정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의 원피스를 주로 선보였는데, 특히 어깨 부분이 봉긋하게 솟은 퍼프소매가 눈에 띄었다. 시몬느 로카, 데이비드 코마, 에르뎀 등은 반짝이는 비즈나 금속 장식 대신 잔주름과 색깔이 다른 끈으로 보디라인을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을 내놨다. 색색의 끈 장식은 단색 블라우스의 목 부분과 팔, 허리 라인을 강조하는 데 유용하다.


6 프린트, 패치워크로 아트를 입다 내년 봄에는 문자나 캐릭터 그림 같은 그래픽 프린트보다 현대미술 캔버스를 옮겨온 듯 추상적 분위기의 아트 프린트가 대세를 이룰 듯하다. 물감이 터지는 느낌을 살린 크리스토퍼 케인, 우아한 곡선미를 응용한 JW. 앤더슨 등 촉망받는 런던 디자이너 두 명이 모두 아트 작품을 입은 듯한 독특한 프린트를 보여줬다. 영국이 자랑하는 디자이너 폴 스미스와 조나단 샌더스는 색깔과 무늬가 다른 천을 조합하는 패치워크 디자인으로 ‘신선한 대비’를 이뤘다.


7 낡은 듯 보이는 디스트레스트 룩디스트레스트(Distressed) 룩이란 마르케스 알메이다의 옷처럼 일부러 ‘옷감을 해지게’ 또는 ‘보풀이 일어나게’ 만든 옷, 크리스토퍼 케인의 니트 카디건처럼 원래의 옷감 위에 다른 옷감을 덕지덕지 붙여서 누더기처럼 보이는 옷을 말한다. 말하자면 개인의 취향이 잘 반영된 오래된 옷 특유의 독특함을 발산하는 옷이다.

한국 디자이너들도 맹활약2016 런던패션위크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 무대는 한국인 디자이너 이정선의 브랜드 J. JS. LEE가 장식했다. 똑 부러지는 커팅과 미니멀한 실루엣의 옷을 만드는 이씨는 2010년 자체 브랜드를 론칭한 후 뉴젠 프로젝트를 수상한 차세대 디자이너. 런던의 유명 편집숍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디컨 바우덴 부사장은 “몇 년 전 첫 번째 쇼를 보자마자 그의 옷을 입점시킨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그의 디자인엔 절제되고 정교한 미학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쇼를 한 최유돈 디자이너 역시 화가 존 안스터 크리스찬 피츠제럴드로부터 영감을 받은 여성스러우면서도 개성 있는 옷을 내놔 호평 받았다. 21일에는 레지나 표가 자연적인 소재인 실크, 면, 리넨 등을 조합해 꾸미지 않은 듯 세련된 의상들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한편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주영한국문화원이 후원하는 ‘패션 코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진우·구연주 부부가 만드는 제이쿠(J KOO)와 계한희의 카이(KYE)가 5일 동안 열리는 런던패션위크 공식 쇼룸에 참가했다. ●


런던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각 브랜드·런던패션협회·AP·퍼스트뷰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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