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정보 이용한 질병 치료 중요해져 … 한국 제약사 관심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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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의 과학사회학자였던 토머스 쿤(1996년 사망)은 『과학혁명의 구조』(62년)에서 ‘과학의 발전은 단계적·점차적인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한 단계를 도약한다’고 설명했다. 과학혁명은 이른바 ‘패러다임 시프트’를 거친다는 것이다.

글로벌 혁신 기업인, 미래 50년을 말하다 <9> 세베린 슈완 로슈 회장
슈완 회장이 주는 미래 전략 팁
바이오산업을 성장동력 삼으려면
약값 인정해 이익 남길 여지 줘야

 세베린 슈완 회장은 바이오제약품의 가격에서도 이 패러다임 시프트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이를 ‘치료에 대한 환자의 접근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슈완 회장은 “아무리 좋은 약을 개발해도 전 세계 환자가 치료약이나 치료 방식에 같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면 돈이 없는 환자들은 이를 이용하기 힘들게 된다”고 말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그리고 후진국 간 환자가 지불하는 비용의 차이를 둬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이를 개발 회사의 책임으로만 몰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슈완 회장은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의료제도 개입을 주문했다. 공공의료보험제도를 통해 각국에 맞는 수준으로 일반 시민이 신약이나 새 치료 방법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해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대신 약값을 낮게 책정하는 정부에서는 반드시 개발사에 금전적 혜택을 줘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슈완 회장은 “그렇지 않을 경우 소비자는 개발 회사에만 ‘약값이나 치료비를 내려야 한다’고 요구하게 되고, 금전적 부담을 떠안은 기업은 연구·투자할 역량을 잃고 도태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이오제약 산업은 과학에 근거하기 때문에 과학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과학의 결과물이 나오면 그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며 “그 노력과 비용에 대해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을 원한다면서도 혁신의 결과물과 향후 혁신을 위한 돈을 지불할 수는 없다고 하는 건 아이러니”라고 그는 꼬집었다.

 한국 역시 슈완 회장에게는 비슷한 상황으로 비치고 있다. 정부의 약값 일괄 인하 정책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국이 바이오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반드시 과학적 연구에 투자하는 기업이 정당한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런 근거로 슈완 회장은 로슈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그는 “매출의 20% 정도를 매년 연구개발(R&D)에 투자하지만 실제로 그 결과가 나타나는 건 미미하다” 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간다고 했다. 그는 “신약 개발에 내재돼 있는 위험 요소를 인정하는 것은 바이오제약사들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바이오제약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전략적 팁도 줬다. 그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하나의 질병에도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점차 알아 가고 있다”며 “의약품에 대해 병이 진행되는 단계 중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체지표(Biomarker)를 활용하는 방식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병을 진단하는 단계에서 분자정보를 활용하고, 개인의 개별적인 유전적 조건까지 고려해 치료하는 맞춤의료가 그 연장선상에 있다. 슈완 회장은 “질병에 대한 정보 규모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분자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조언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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