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지일파' 사사카와 재단 이사장 "아베 총리 70년 담화 실망스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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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민간 외교창구로 손꼽히는 사사카와(笹川) 평화재단 이사장이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책임회피로 일관한 실망스런 문서'라고 비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같은 주장을 펼친 주인공은 사사카와 평화재단 미국 지부의 데니스 블레어 이사장이다.
미국 국가정보국장 출신으로 대표적 지일파로 꼽히는 블레어 이사장조차 아베 총리의 담화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는 지난 8월 14일 사사카와 재단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아베 총리의 70년 담화를 조목조목 분석했다.

블레어 이사장이 비교대상으로 삼은 문건은 20년 전 발표된 무라야마((村山)담화다. 그는 "무라야마 담화는 700단어인 반면 아베 담화는 이보다 3배 길다"며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의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표현하는 강력한 문장들로 이뤄져 있지만 아베 담화는 장황하고 두서없어 메시지를 분산하려는 변론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베 담화의 첫 부분은 메이지 시대 일본사를 선택적이고 자국 이익에 부합하도록 발췌한 점이 눈에 띈다고 꼬집었다.

또 하나의 차이는 '분명한 주어'의 유무다.

그는 "무라야마 담화는 분명한 대상을 가진 능동태를 사용했다"며 "특히 '나(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를 지칭)는 통절한 사죄를 말한다'는 부분이 그렇다"고 적었다. 반면 아베 담화는 너무나 자주 익명의 수동적 목소리에 호소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게 블레어 이사장의 지적이다.

블레어 이사장은 "아베 신조 총리 자신의 사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일갈하며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역사에서 끔찍한 행동에 대한 사죄는 인위적인 한계를 그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베 담화는 실망스럽다. 다른 나라를 안심시킬 큰 기회를 놓쳤다"며 "우리는 일본의 지도자들이 일본인들이 자국의 과거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사사카와 재단은 A급 전범 용의자 출신인 사사가와 료이치(笹川良一)가 설립한 워싱턴 정가의 싱크탱크다. 일본 관련 세미나 등을 주관하거나 후원해 워싱턴 내 친일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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