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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무력감에 싸인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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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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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일상 속에서 20대나 30대 젊은이들을 만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선배, 작가, 인터뷰이로서 후배, 독자, 인터뷰어인 젊은이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다. 그때마다 젊은이들이 창의적 개성, 당찬 자기표현력, 유연한 사고 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보다 더 놀라는 대목은 그들이 재능이나 역량에 비해 스스로를 얼마나 낮게 평가하는지, 자신을 얼마나 믿지 못하는지 확인할 때다. 지난 몇 해 동안 사석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자주 이렇게 물었다. “삶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요?” 거듭 ‘포기’를 언급하는 청년들의 무력감이 읽히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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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에서 우리 사회 남자들이 보이는 두 가지 극단적 성향으로 무력감과 분노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것이 심리 문제를 외면해 온 우리 사회에 넓게 자리 잡은 만성 우울증 증상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했다. 양극단의 성향 중 공격성은 주로 기성세대에서, 무력감은 젊은 세대에서 나타난다는 특성도 있다. 내가 만난 젊은이들은 대부분 그들 부모가 조급하고, 불같이 화내며, 자식을 자기 방식대로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 젊은이는 이런 말도 했다. “386세대는 참 오래 해먹는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자부심에 차서 말하는 이들에게 느끼는 상대적 무력감이 읽히는 말이었다. 그들이 만든 세상에 대한 불만이 내포된 말이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 자살률이 낮아졌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럼에도 20, 30대 젊은이들의 자살률은 오히려 늘었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다. 우리 세대가 그들에게 무엇을 물려주었는지 확인할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통증을 느낀다.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도 두려움에 갇혀 머뭇거리는 젊은이들, 생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묻는 이들에게 말해 준다. 부모 세대는 결핍감과 인정 욕구, 강박 성향에서 생의 추진력을 얻었다고. 그렇지만 진정한 생의 에너지는 불안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 이타적 생의 목표 등에서 나온다고.

 또 명절이다.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면 외면해 둔 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단식 광대』라는 작품에서 거식증인 주인공이 찾아다니는 음식이 관계 맺기에 대한 은유라고 말한다. 주인공이 원하는 관계는 “거짓 없고, 가식적으로 염려해 주지 않으며, 죄책감을 씌우지 않고, 질책하지 않고, 경고하지 않고, 불안하게 하지 않고, 투사하지 않는, 진정으로 감정이 교류되는 의사소통이었다.” 생의 에너지는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 맺기에서도 나온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