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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목요일] “얼굴도 모르는 난민 챙기러 경찰서 수십번 가…24시간 대기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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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21일 저녁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아파트가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얄라얄라(빨리빨리)!” 걸음을 재촉하는 집주인 아사드(28·가명)의 손짓에 시리아 난민들이 집으로 들어섰다. 동두천 곳곳에서 모인 이들을 맞이한 건 비영리단체(NPO) ‘피난처’ 활동가 5명이었다. 난민 실태 조사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이들은 치킨과 감자튀김, 콜라를 한가득 탁자에 펼쳐놨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교를 배려한 야식 메뉴다.

한국에 온 난민 돕는 친구들
20년간 난민 1만2000여 명 한국에
난민 인정은 4% 불과한 522명뿐
정부, 잠재적 불법체류자 취급?

‘작은 NPO’ 피난처·난민인권센터
‘퐁퐁’ 같은 주방세제 구입부터
긴급구호에 소송 자문까지 도와

 이날 피난처가 모은 시리아 난민은 모두 10명. 야식으로 경계심을 푼 이들에게 평소 힘들었던 점을 편하게 말해 달라고 하자 아랍어와 영어, 한국어가 뒤섞인 불만이 쏟아졌다. 사나(27·가명)는 유일하게 아는 한국어 ‘폐차장’을 말하면서 여기선 어렵고 위험한 일만 시킨다고 했다.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지만 한국어 공부는 시간이 없어 엄두도 못 낸다고 토로했다. 의료보험이 없어 아파도 병원을 못 가고 참는다는 난민도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적은 이재린 피난처 간사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라며 일일이 연락처를 알려줬다.

 지난 2일 터키 해안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을 계기로 난민에 대한 관심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찾은 난민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1994년부터 올 7월까지 국내에서 난민 등록을 신청한 인원은 1만2208명.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사람은 이 가운데 522명(4.3%)에 불과하다. 장기 체류와 정부 승인을 통한 제한적 취직만 허용하는 ‘인도적 체류 허가’도 876명(7.2%)에 그쳤다.

 피난처·난민인권센터 같은 NPO들은 난민들의 어려운 처지를 돕는 ‘난민 지킴이’로 나서고 있다. 난민 신청 과정을 도와주는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긴급구호하며 실태조사나 소송 자문도 수행한다.

 해외 아동이나 국내 저소득층을 돕는 대형 NPO들에 비해 이들의 규모는 단출하다. 피난처와 난민인권센터는 10명도 안 되는 직원이 난민 수백 명을 담당하고 있다. 21일 찾은 서울 녹번동 난민인권센터 사무실에선 직원 3명이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느라 쉴 틈이 없었다. 김성인 사무국장은 “직접 사무실을 찾아오는 난민도 많아 수십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난민들은 주로 외국인이 많이 있는 서울 이태원, 경기도 안산·동두천 등에 흩어져 살지만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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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민이 꾸준히 늘면서 24시간 대기도 흔한 일이다. 김 사무국장은 2009년 센터를 처음 열 때부터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게 버릇이 됐다. 그는 “재작년 파키스탄 난민이 밤에 갑자기 쓰러졌는데 소방서와 의사소통이 안 돼 ‘삼각 통화’로 병원에 보낸 적이 있다. 한국말을 못한다는 이유로 취객에게 얻어 맞은 난민을 챙기러 경찰서에 간 적도 수십 번”이라고 말했다. 피난처의 박지현 간사는 21~22일 아사드의 부인이 아이를 낳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자 통역 차원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열정을 앞세운 이들에겐 뒤에서 도와주는 조력자들이 큰 힘이다. 언어 문제를 해결해주는 ‘통·번역 활동가’와 전문적으로 소송을 전담해주는 ‘법률 활동가’ 등이다. 난민인권센터에서 아랍어 통·번역을 돕고 있는 진경호(25·대학생)씨는 2012년 튀니지에서 우연히 시리아 난민을 만나게 된 뒤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다. 그는 “‘퐁퐁’ 같은 세제가 수퍼마켓 어디에 있는지부터 시작해 병원에서 증상을 대신 알려주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공익인권법재단인 공감은 10년 넘게 난민 소송을 주도하면서 수십 건의 승소를 거뒀다. 황필규 변호사는 “우리 정부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난민 출신국이 얼마나 위험한지 최대한 자세히 조사해 제시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거쳐 몇 년 만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으면 그간의 어려움이 눈 녹듯 사라진다”고 했다.

 이들 덕분에 난민은 이 땅에서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수단 출신 아삼(29·가명)도 지난주 1심 판결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삼은 대학교에 재학하면서 수단 정부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조직했다가 고문을 받았고 2년 전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NPO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절대 소송까지 생각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NPO들에 남은 과제는 우리 사회의 인식 개선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난민 문제는 ‘딴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많다. 피난처와 함께 프랑스어 통·번역 자원봉사를 하는 오대남(36·회사원)씨는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우리나라에도 난민이 있어요?’라고 묻는 경우가 태반이다. 유럽 말고 우리 주변에도 난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난민을 바라보는 시선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린 간사는 “정부는 난민들을 잠재적인 불법체류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목적으로 신청하는 일부 ‘가짜 난민’을 확대 해석하면서 심사 과정부터 선입견이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김성인 사무국장은 “최장 9년까지 걸렸던 난민 심사 기간이 3~4년으로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난민을 위해서라도 심사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김선미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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