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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입시, 대입 관문이라는데 전문적인 진학 지도 필요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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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진 고교 진학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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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다양화로 사교육 컨설팅 의존
특성화고 정보는 그마저도 없어 막막
홍보 책자만 믿고 지원했다 후회하기도

2008년 고교 다양화 정책 도입 이후, 고교 진학 방법과 절차가 복잡해졌다. 특목고·자사고 등 성적 우수자가 가는 학교는 물론,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할 수 있는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 고교의 종류가 많아지고 학교별 전형 방법도 다양해지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선 “고입도 대입 못지 않은 난맥상”이라는 하소연이 나온다. 이를 활용해 학생의 적성과 공부 방법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면 대입이나 취업 등 이후 진로를 택하기도 쉽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중학교에 체계적인 고교 진학 지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현재 중학교에서 이뤄지는 진학 지도는 어떤 모습일까.

진학 지도 강화하자 명문고 입학률 2배

서울과학고 2명, 민사고 4명, 하나고 4명, 대원외고 5명, 한영외고 10명, 휘문고 29명…. 2015학년도 대명중(서울 강남구)의 고교 진학 현황이다. 대명중의 명문고 진학 실적이 원래 이렇게 좋았던 건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민사고 2명, 하나고 2명, 대원외고 0명, 한영외고 2명이 진학하는 데 그쳤다. 한 해 만에 명문고 진학률이 2배 이상 오른 이유로 이 학교 최이권 진로진학 상담교사는 “체계적인 진학 지도”를 꼽았다.

대명중은 특목고·자사고에 진학할 의지가 있는 학생을 대상으로 방과후 수업을 개설하고, 학교별 모집 요강을 분석해준 뒤 자기소개서를 완성할 수 있게 돕는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끼리도 입시 정보를 공유한다. 최 교사는 “독서활동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고교도 있고, 봉사활동에 비중을 두는 곳도 있다”며 “담임교사들과 이런 정보를 공유하고, 학생이 지망하는 학교에 맞게 학생부에 필요한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기재하려 애쓴다”고 설명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에서 진학을 도와주니 든든하다”는 반응이다. 하나고 입시를 준비 중인 3학년 유시원군은 “방과후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선생님이 하나고 입시에 필요한 자료를 파일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해 줬다”며 “하나고에 합격한 선배들의 자기소개서를 보여주거나 전년도 면접 질문도 구체적으로 알려주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가닥이 잡혔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중학교의 진학 지도는 고교 입학원서 써주는 게 전부였다”며 “학생들이 진학 정보를 위해 사교육을 찾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고교 입시 지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성화고 찾는 중위권에겐 더 절실

특성화고 진학 지도에 힘을 쏟는 학교도 있다. 상봉중(서울 중랑구)의 오인 진로진학 상담교사는 “일반고와 특성화고 사이에서 어느 학교로 가야 할지 갈등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입시 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교사는 “중위권 이하 거의 모든 학생이 일반고와 특성화고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며 “학생의 적성과 희망 진로를 파악한 뒤, 특성화고에서 관련 전공을 탐색하고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는 방법 등을 꼼꼼하게 알려준다”고 말했다.

김덕경 대림중(서울 영등포구) 교사는 체계적인 진학 지도를 위해 학생과의 상담은 물론, 학부모 교육도 자주 한다. 특목고·자사고뿐 아니라 자율학교, 자율형공립고,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등 다양한 학교 유형과 특징을 설명한 뒤 자녀의 적성과 성적에 맞는 학교를 함께 찾아 나간다. 김 교사는 “지금의 학부모는 중학교 졸업하고 인문계 고교와 실업계 고교만 선택하면 됐던 세대”라며 “복잡해진 고교 입시 지형에 적응하지 못한 학부모에게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시키는 것이 진학 지도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관광고 조리과에 입학한 양현석(대림중 졸)군은 “중1 때부터 선생님과 진학 상담을 계속하다 중2 때 목표 고교와 전공을 정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진학 담당 선생님에게 특성화고의 ‘선취업 후진학’(졸업 후 취업해 3년간 일한 뒤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이나 ‘일·학습 병행제’(졸업 후 취업과 대학 진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제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특성화고에 아무 걱정 없이 진학할 수 있었다”며 “내신 3등급 이내에 들면 ‘일·학습 병행제’를 통해 졸업 후 곧바로 관광·외식계열의 명문으로 꼽히는 경희대나 세종대도 진학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보만 있었어도 최악 선택 피했을 것”

하지만 이렇게 체계적인 진학 지도가 이뤄지는 중학교는 많지 않다. 대다수 중학교에서는 진학보다는 진로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3 자녀를 둔 학부모 조모(47·서울 강서구)씨는 “얼마 전 진학 상담을 받으러 학교를 찾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아이의 꿈이 외교관이라 국제고에 입학시키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담임교사가 외고와 국제고도 구별하지 못하면서 두루뭉술한 답변을 이어가더니 "학교는 학생의 꿈을 찾아주는 곳이지 특목고 보내는 학원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는 것이다. 조씨는 “기분도 안 좋았지만 교사가 고교 입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사교육업체에서 컨설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의 자녀처럼 특목고나 자사고 입학을 원하는 상위권 학생들은 사교육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특성화고에 관심 있는 학생은 정보 얻기가 더 막막하다. 지난해 특성화고에 딸을 입학시킨 최모(49·서울 동대문구)씨는 “잘못된 고교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의 딸이 중3 때 특성화고에서 실시한 홍보 내용만 믿고 즉흥적으로 학교를 선택해 적성에 안 맞는 전공과 좋지 않은 학습 분위기 때문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학교 때 교사에게 고교 진학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면 특성화고 홍보 소책자만 건네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주지 않아 답답했다”며 “최소한 학과 정보라도 제대로 알려줬다면 최악의 선택은 피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중학교 교사들 사이에서도 고교 진학 지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Y중학교의 한 교사는 “고입이 대입 못지않게 중요해진 상황에서 중학교 교사도 고교 교사처럼 진학 지도에 전문성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교 진학부장이 대입과 관련해 최신 정보를 분석하는 등 진학 지도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갖추고 학생을 지도해주는 것처럼, 중학교도 전문성을 갖춘 진학 전담교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학부모 조씨는 “중학교 교사 중 대다수는 아직도 진로 지도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데, 진학과 동떨어진 진로 교육이 무슨 현실성이 있느냐”고 꼬집으며 “고입이 대입을 결정하는 첫 관문이 된 상황에서 고교 진학지도에 손 놓고 있는 건 중학교 교사들의 직무 유기 아니냐”고 주장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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