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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때처럼 ‘사회적 대타협’ 내세우는 새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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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둘째부터)이 14일 노동개혁 당정협의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은 김정훈 정책위의장, 오른쪽은 이인제 노동시장선진화특위 위원장. [김상선 기자]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15일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 30여 분 지각했다. 고용노동부와의 당정회의에 참석했다가 오는 길이라 도착이 늦었다. 그가 입장하자 김무성 대표는 회의 도중 다른 참석자들 자리를 하나씩 옮기게 했다. 그런 뒤 자신의 한 자리 건너에 이 최고위원 좌석을 만들고 한마디를 권했다. 개선장군 대접을 받은 이 최고위원은 “노사정 대표가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에 서청원 최고위원이 큰소리로 웃으며 “환영합니다”고 했다.

 아직 험난한 국회 입법 과정이 남아 있음에도 새누리당 분위기는 밝았다. 전날 노사정 대타협의 여운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꼭 입법이 안 된다고만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난 5월 난제로 꼽혔던 공무원연금 개혁법안을 처리한 전례가 이런 자신감의 배경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번 노동개혁 과정은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과 묘하게 닮았다.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는 “공무원연금 개혁 때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대타협’의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점, 당·청 관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끌고 김무성 대표가 서포트(지원)하는 구조를 지녔고 여론 지지를 받았다는 점 등이 흡사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특히 법안 통과에 기대감을 갖는 이유가 사회적 대타협 형식이라는 부분이다. 노동법 전공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해고 등 핵심 사안에 대한 논의를 일정 부분 유보한 미완성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타협의 판을 깨지 않고 대타협의 프레임 내에서 협상을 했다”며 “이번 노사정 합의는 또 하나의 사회적 대타협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고 했다.

 물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 삶의 안정과 고용의 질을 ‘하향 평준화’하는 합의안이란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이종걸 원내대표)며 선뜻 법안 처리에 동의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회적 대타협 형식의 합의를 언제까지 거부할 순 없을 것이라는 게 새누리당의 분석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도 “청와대는 타협이 이뤄졌기 때문에 얻을 건 다 얻었다”며 “입법은 국회의 책임이라 불발 땐 여야 모두 상처를 입게 된다. 야당이 어떤 카드로 대응할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당·청 간 공조가 원활한 상태라는 점도 낙관적 분위기의 배경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때도 박 대통령이 먼저 의제로 제시하자 김 대표는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이번에도 당시와 비슷한 코스를 밟아 왔다. 한 핵심 당직자는 “김 대표는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 당사자들에게 하루에도 수차례씩 전화하고 독려하면서 상황을 수시로 체크했다”며 “노동계가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공무원연금 개혁 때 보인 ‘중재자’ 역할을 조용히 물밑에서 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대를 넘어서고 있다는 점은 오히려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40% 안팎)보다 상황이 호전된 측면이 있다.

 주목되는 것은 노동개혁이 당·청 관계에 미칠 중장기 효과다. 당내 의견이 나뉘고 있다.

 한 친박계 의원은 “박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는 상황에서 노동개혁에 합의하게 된 만큼 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주도권은 더 공고해질 것”이라며 “내년 총선도 결국 박 대통령을 간판으로 치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동개혁이 박 대통령의 당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란 뜻이다.

 반면 김 대표와 가까운 한 재선 의원은 “노동개혁 합의를 통해 한동안 그런 구도가 이어지겠지만 계속되는 개혁 드라이브가 총선에서 반드시 유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며 “총선 직전 당과 청와대 사이에 주도권을 둔 파열음이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글=이가영·위문희 기자 al@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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