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몰 다섯 사장님, 오프라인 매장 공유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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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일산 원마운트의 가게 ‘영원’은 가죽잡화 등 각기 다른 온라인 몰을 가진 청년 상인 5명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이들은 공간만 나누는 게 아니라 사업 노하우도 공유한다. 작은 사진은 꽃집 코너 이대강씨가 만든 ‘케이크 화분’. [조문규 기자], [사진 영원]

아주 작은 패션·인테리어 수퍼마켓이라고나 할까. 73㎡ 가게 안에 액세서리, 수제 가방, 꽃집 등 5개 코너가 있다. 점포를 돌보는 이는 매일 바뀐다. 점원이 아니라 사장이다. 각기 인터넷 쇼핑몰을 가진 다섯 명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연중 무휴로 매장을 돌본다. ‘오프라인 매장 함께 쓰기’ 실험이다. 경기도 일산의 원마운트 쇼핑몰에 있는 가게 ‘영원’ 얘기다.

 근처엔 주스를 파는 16㎡의 자그마한 거리 점포가 있다. 친환경 사과·토마토 등을 그 자리에서 갈아 주스를 만든다. 그것 말고도 주력 상품이 있다. 비무장지대(DMZ) 체험이다. 주스용 사과를 가져오는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내 과수원에서 친환경 과일을 재료로 요리 체험을 하고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 등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주스 가게 ‘파머스 애플’의 이동훈(28) 사장은 “사과를 가져오는 아버지 농장이 DMZ 인근에 있는 점에 착안했다”며 “친환경 주스에 ‘DMZ’라는 스토리를 입혀 관광상품까지 판매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상인들이 일산 원마운트 몰에 모였다. 올 초 배병복(59) 원마운트 회장이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에 연락한 게 계기였다. 배 회장은 “아이디어는 있는데 임대료가 부담돼 목 좋은 곳에 점포를 내지 못하는 청년 상인들에게 점포를 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일종의 ‘창업 인큐베이팅(보육)’ 공간을 내주는 것이다. 처음 6개월은 임대료를 받지 않고, 다음 6개월은 매출의 10%만 받기로 했다. 10%도 일반 임대료의 절반 이하다.

 이런 조건을 내걸고 청년위원회와 경기중소기업청 등이 청년 상인을 모았다. 40여 명이 지원했다. 그 중 ‘창의성’을 보고 아홉 명을 뽑았다. 창의성이 엿보이면 투자자가 나올 것이고, 그렇게 투자를 받은 청년 상인이 점포를 옮겨가면 그 자리에 새 청년 상인을 입주시키는 방식을 계획했다.

 심사 결과 다섯 명이 공동 운영하는 ‘영원’ 등이 지난 4월 말 문을 열었다. ‘영원’에 입주한 청년 상인 하나하나도 아이디어로 무장했다. 꽃집 코너에선 ‘케이크 화분’을 판다. 케이크를 자른 형태의 작은 화분 10개를 붙여 둥근 케이크 모양을 만들고 각각에 다른 식물을 심어놓았다. 케이크 모양이어서 생일 선물로 많이 팔린다고 한다. 성균관대 생명공학과를 나온 이대강(35)씨의 아이디어다.

 ‘영원’의 다섯 명 사장은 남의 물건 팔아주기에도 열심이다. 자기 상품에만 열중하는 식으로 운영했다가는 돌아가며 가게를 보는 5일 중 자신이 나오지 않는 나흘을 공칠 수 있어서다. 이들은 “오프라인 매장에 와본 손님들이 온라인에서 파는 물품을 신뢰하게 돼 온라인 매출도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시너지도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판매를 잘하는 사장,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잘 아는 사장 등이 서로 노하우와 정보를 교환한다.

 ‘점포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4개월여 만에 투자자를 확보하는 성과도 얻었다. 거리 점포 ‘길바닥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김상운(30)씨가 투자를 받아 지난 1일 서울 강남에 가게를 냈다. 새우·단호박 같은 튀김에 버터를 바르고 시리얼을 뿌려 붙인 뒤 철판에서 살짝 볶아내는 메뉴였다. 신용한 청년위원장은 “정보기술(IT) 등 기술 분야 청년 기업가뿐 아니라 아이디어를 가진 청년 상인들도 인큐베이팅을 통해 투자를 받는 모델을 만들어 보이는 게 주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글=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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