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오승환, 30년 만의 ‘한신 천하 꿈’ 마무리 준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4호 23면

한신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역투하는 오승환.

지난 3일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와 히로시마 카프의 경기가 열린 효고현 니시노미야의 한신 고시엔 구장. 경기에 앞서 한신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마무리투수 오승환(33·한신)에게 “한신이 일본시리즈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못한 팀이다.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다.


 오승환은 미소를 지으며 “경기장에서 팬들을 보시면 알 거다. 10점 차로 지고 있어도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러다 9회 1점이라도 내면 마치 이긴 것처럼 더 신나게 응원한다”고 말했다.


 ‘돌부처’ 오승환이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한신은 올 시즌 캐치프레이즈를 ‘하나가 되어 정상으로 향하자(go for the top, as one)’로 정했다. 1935년 창단한 한신은 올해로 8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9차례 센트럴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최고 팀을 가리는 일본시리즈에서는 85년 우승이 유일하다. 일본프로야구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이다.   

일본 언론, 오승환 기록에 대대적 관심30년 무관의 설움을 겪은 한신은 올해는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각오를 캐치프레이즈에 담았다. 85년 선수로 입단해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30년을 한신에서 보낸 와다 유타카(52) 감독은 시즌 전 “10년 만의 리그 우승, 30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목표는 그것 밖에 없다”고 밝혔다. 한신 구단은 아예 85년과 비슷한 스타일로 유니폼을 교체했다. 우승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시즌 전 선수 영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던 주전 유격수 도리타니 다카시(34)가 잔류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때문에 한신은 센트럴리그에서도 히로시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밀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와다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훈련 도중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10일 현재 65승1무59패로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함께 센트럴리그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다. 3위 요미우리에 2경기 차로 앞서 있다.


 한신의 선전은 일본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세이브(46개) 기록에 도전하는 오승환의 역투가 있어 가능했다. 오승환은 팀이 19경기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2승2패·39세이브(전체 1위) 평균자책점 2.71을 기록 중이다. 이미 지난해 세이브 기록(39세이브)을 달성해 산술적으론 2005년 이와세 히토키(주니치)와 2007년 후지카와 규지(한신)가 세운 46세이브를 넘어설 가능성이 충분하다. 일본 언론에서도 오승환의 도전을 연일 보도하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작 오승환은 담담했다. 만족하기 어렵다고 했다. 세이브 추가 속도는 빠르지만 평균 자책점이 지난해 1.76에서 2점대로 높아졌고, 홈런을 맞고 허무하게 경기를 내준 적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7월 평균자책점이 5.68에 이를 정도로 기복도 심했다. 오승환은 “밸런스가 왔다 갔다 해 힘들었다. 동계훈련에서 근육을 다쳐 제대로 몸을 만들지 못했고, 시즌 중 감기몸살로 컨디션 조절이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또 “매일 등판을 준비해야하는 불펜투수는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네 시즌 이상 꾸준히 좋은 모습 보이기 힘들다”고 했다.


  이미 지난해 세이브 기록(39세이브)을 달성한 오승환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하면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기록을 세운다면 한국프로야구에도 의미 있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일본 생활 2년차인 그는 쉬는 날 지역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유일한 낙이다. 이동이 잦아 한국에서 취미로 했던 화초 가꾸기는 하지 못한다. 올 시즌을 끝으로 한신과의 계약이 끝나는 오승환은 “구단과 팬들의 우승 열망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연투도 상관없다.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승환은 지난 1월 한달 내내 괌에서 개인훈련을 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30년 만의 우승을 노리는 한신의 든든한 수호신이 됐다. [중앙포토]

올해 계약 만료… 팬들 "오승환 남아라"기자가 한신의 고시엔구장을 찾은 3일은 경기 시작 전까지 비가 내렸다. 자정까지 비 예보가 있어 경기가 취소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한신을 상징하는 노란 우의와 우산을 쓴 팬들이 모여들었다. 빗줄기가 잦아들기 시작했고, 경기 시작 전에는 평소와 다름없이 팬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관중은 3만4331명. 지난해(3만7355명)에 비해 평균 홈 관중도 2000명(2015년 63경기 3만9300명)가량 늘었다.


 한신은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의 오사카·고베·교토 등 대도시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도쿄를 연고로 하는 최고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에 필적할 만하다. 한신과 요미우리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앙숙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처럼 오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신은 일본시리즈로 가는 길목에서 번번이 요미우리에게 발목을 잡혔다. 하지만 지난해 클라이맥스 파이널시리즈에서 요미우리를 꺾어 기세가 등등하다. 최근 요미우리의 전력도 예전만 같지 못하다. 그래서 한신 팬들의 기대감은 크다.


 고시엔구장에서 만난 팬들은 “올해가 우승의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가족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이와무라(46)는 “올해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일을 낼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한신의 오랜 팬이라는 오오이시(52)는 “전력 보강은 없었지만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이 많은 것이 큰 장점”이라고 했다.


 한신 팬들은 열광적이면서도 극성맞기로 유명하다. 한신이 우승하면 오사카 난바에 위치한 도톤보리강 에비스다리에 뛰어 드는 전통이 있다. 토미야스(20)는 “한신 팬들은 세계에서 가장 응원이 열정적이고 결속력이 뛰어나다” 고 주장했다.


 한신의 ‘수호신’ 오승환에 대한 기대도 크다. 아쯔시(20)는 “오승환 덕분에 1위 싸움을 할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겐 신적인 존재다”고 칭찬했다. 나츠키는 “계약이 끝나지만 계속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오승환이 9회 등판하자 팬들의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승환은 9회를 가볍게 마무리 지었고 히로시마를 5-1로 물리쳤다. 팬들은 우승이라도 한듯 응원가 ‘타이거즈의 노래’를 부르며 환호했다.


니시노미야=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