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30년 투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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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 496쪽, 2만2000원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불행하게도 나는 중요한 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경향이 있다.”

 저자의 결혼식장이다. 교회 제단 앞에서 신부가 통로를 따라 걸어나오길 기다리며 그는 갑자기 극심한 불안에 사로잡힌다. 몸은 떨리고 땀은 비오 듯 흐르며, 당장이라도 쓰러질것만 같다.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간호사들은 산고 중인 그의 아내가 아닌 기절하기 직전의 남편인 그를 보살펴야 했다. 시험장에서, 취업 면접을 보다, 그냥 거리를 걷는 중에도 갑작스런 불안이 몰려왔고 돈과 일, 죽음과 그 외 모든 것을 끊임없이 걱정했다. 갇힌 공간, 높은 곳, 비행기 여행, 구토, 심지어 치즈 공포증까지 갖고 있다. 이 책은 아주 어릴 적부터 극도의 불안증을 지닌 예민덩어리로 살아온 40대 저자의 자기 탐구 여정, 혹은 치유를 위한 몸부림의 결과다.

불안증은 일어나지 않은 앞날의 고통에 대한 과도한 걱정이 몸과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진 반비]

 저자는 의사도 심리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니다. 잡지 ‘애틀랜틱’의 에디터로 일하며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다. 그래서 이 책은 분야가 애매하다. 대신 모든 것이 담겼다. 역사·문학·철학·종교·약학·의학에서 ‘불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실험들을 해 왔으며, 무슨 처방전을 내놓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런 지적 여정은 저자 자신의 개인 경험과 기가 막히게 엮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8년간 불안과 관련된 각 분야의 책을 탐독했고, 책과는 상관없이 30년간 개인 상담을 받아왔으며 인지행동 치료와 집단 치료, 요가·침술·마사지, 수없이 많은 약물을 본의 아니게 임상실험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나는 지난 반세기 동안의 불안 치료 트렌드의 산증인 같은 사람이다.”

 무엇보다 재밌다. 첫키스의 순간에 당했던 굴욕, 케네디가에 초청받아 갔다가 과민성대장증상으로 화장실을 막히게 만든 일화 등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저자의 고백에 폭소가 터진다. 에피소드 사이사이 불안증은 과연 병인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 각종 약물은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가 등의 문제를 꼼꼼히 분석한다.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해설과 각주는 “불안과 강박이 위대한 성취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도 보인다. 실제 저자는 ‘불안’의 개념을 정의하는 데만 책의 상당 분량을 할애하는 데, 이는 “혹시 불안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할까봐 불안해서”였다.

  불안증을 고칠 명확한 처방이 책에는 없다. 거의 모든 치료를 받아 본 저자 역시 “그 어떤 약과 치료도 일시적인 효과가 있었을 뿐 근본적으로 나를 바꾸진 못했다”고 말한다. 그렇다해도 누구나 하나쯤을 갖고 있는 불안증의 실체를 더없이 예리하고 유쾌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마지막 문장 역시 진솔하다. “어쩌면 이 책을 마무리하고 출판하는 것, 그리고 내 수치와 공포를 세상에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힘을 주고 불안을 덜어줄지도 모르겠다. 어찌될지는 곧 알게 되겠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S BOX] 토머스 제퍼슨도 간디도 대중연설 울렁증

저자가 체험한 다양한 불안증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것은 ‘발표 불안’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증상을 말한다. 저자는 “극심한 발표 불안을 극복하고(혹은 극복하지 못한 채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얻는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서정시를 쓴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쿠퍼는 관직 심사를 받으러 상원에 출석하게 됐는데, 사람들 앞에 서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목을 매달았다(다행히 자살 기도는 실패했다).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도 불안증 때문에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대중 연설을 딱 두 번밖에 하지 못했다. 마하트마 간디 역시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마다 끔찍하게 긴장하는” 불안증에 시달렸다.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엘리네크는 대중 앞에서 나설 수가 없어, 노벨상을 직접 수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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