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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불법체류자의 ‘아기 택배’… 브로커 통해 신분세탁 고국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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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엄마가 못나서 미안해.” 지난 6월 28일 인천국제공항. 경기도에서 3년째 불법 체류자로 살고 있는 리아(37·여·태국) 부부가 2개월 된 딸을 끌어안고 울었다. 잠시 후 부부는 딸을 한 여성에게 건넸다. 태국에 있는 아기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는 길이었다. 보육료·의료비 부담에 태국에 보내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불법체류자이고 아기는 국적이 없어 보육료나 국민건강보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생이별을 택한 배경이다.

 

불법체류자인 리아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그래서 대리인을 찾았다. 태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을 만났다. 왕복항공료에 수고비까지 200만원을 부르는 걸 170만원으로 깎았다. 리아는 “흥정해 30만원을 깎을 때는 내 아기가 무슨 물건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요즘 리아는 매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해 태국에 있는 아기가 옹알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리아는 “태국 사람들은 다 있는 쌍꺼풀이 딸에게는 없다”며 “한국에 있었다면 한국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체류 부모 중에는 갓난아기를 고국에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비 부담에 제대로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본국의 할머니·할아버지나 친척 손에서 키우고, 엄마·아빠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부친다.

 리아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불법 행위가 생기는 게 보통이다. 아기 ‘신분세탁’이다. 주한 태국대사관은 자국민 불법체류자를 상당히 관대하게 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아기 여권 등을 내준다.

 하지만 관리를 깐깐하게 하는 나라는 다르다. 브로커를 통해 출생 서류를 조작해 자국 대사관에 출생신고를 한 뒤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합법 체류자를 내세워 진짜 부모 행세도 하게 한다. 그렇게 또 다른 불법이 저질러진다.

 불법 브로커 몫이 있어 돈도 많이 든다. 웬반화(32·베트남) 부부는 2012년 12월 브로커를 통해 당시 9개월 된 딸 웬티미를 베트남에 보냈다. 딸은 합법 체류자인 친구의 자식인 것처럼 서류를 꾸몄다. 비용은 전부 600만원이 들었다. 이 가운데 브로커 몫이 약 400만원이다. 브로커들은 “불법인 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며 많은 돈을 요구한다. 나머지 200만원 중 150만원가량이 아기를 데려가는 호송자와 아기 항공료 등이고, 50만원은 호송자 수고비다.

 이처럼 신분세탁을 해주는 브로커가 적지 않다. 경기경찰청이 지난해 적발한 브로커만 60명에 이른다. 아이를 본국에 보내는 불법체류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브로커 중에는 합법적으로 이주한 외국인도 있고, 한국인도 있다.

 몽골 출신 토바로(28·여)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남편이 추방당한 뒤인 지난해 5월 30일 딸을 낳았다. 그러고 100일이 지났다. 아기를 돌보느라 일을 못해 돈이 떨어졌다. 아기를 몽골의 외할머니(토바로의 어머니)에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서 브로커를 통해 보내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구할 수 없었다.

 “큰마음 먹고 직접 주한 몽골대사관에 갔습니다. ‘내가 한국에 대해서는 불법을 저질렀지만, 몽골에서 불법을 한 것은 아니지 않으냐. 몽골 사람인 나를 위해 일해달라’고 했죠. 출생신고를 늦게 했다는 이유로 16만원의 벌금만 내고 여권을 받았습니다.”

 아기를 데려다줄 사람을 구해 40만원을 수고비로 주고 몽골에 보냈다. “한국에서 엄마 젖을 먹였어요. 몽골에선 분유를 먹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안 먹고 많이 울었다더군요.” 그 말을 하며 토바로는 눈가를 훔쳤다.

 합법 체류자인 임동숙(42·여·태국)씨는 한 번 호송원이 됐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해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태국 불법체류자의 아기를 본국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수고비는 20만원이었다. 자신은 불법을 저지르는 게 아니었기에 승낙했다. 다녀온 뒤에도 가끔씩 호송원이 돼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임씨는 거절한다. “아기와 헤어지는 부모의 모습, 그리고 나한테 안겨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웃는 아기의 모습을 봤어요. 그 모습이 떠올라 다시는 못하겠더군요. 아기는 꼭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특별취재팀=최종권(팀장)·임명수·조혜경·김호·유명한 기자, 이성은 코리아중앙데일리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 기자, 프리랜서 오종찬·김성태, VJ=김세희·김상호·이정석, 영상편집=정혁준·김현서, 디지털 디자인=임해든·김민희 choigo@joongang.co.kr
※취재원 보호를 위해 허락받지 않은 경우는 가명을 썼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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