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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노사정 협상…김대환 위원장, 기재부 강하게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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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정부를 작심하고 비판했다. 노사정 대화가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취지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노사정 협상과 관련해 정부가 비판의 대상이 된 적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10일 오후 4시 20분쯤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브리핑을 자청했다. 그는 "논의에 주목할만한 진전을 봤다"며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논의를 거쳐 저녁 9시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10일을 논의시한처럼 얘기하는데, 10일 시한은 한번도 노사정에서 논의된 적 없다. 10일 시한을 말하는 정부가 어느 정부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10일까지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 단독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10일 2차 협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정부를 비판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는 "이 기회에 분명히 얘기하겠다. 지난 4월까지 협상의 시한은 노사정 대표가 합의한 시한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얘기 한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10일까지 대타협이 되지 않으면 실업급여로 책정된 예산을 삭감한다"는 최 부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는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러면 안된다. 국민의 공감을 받을 수 없는 얘기를 할 때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맞받았다. "대타협을 통해 노동시장의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일정 지키는데 가치를 둘 것인지는 정부가 판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이 왜 이렇게 기재부를 강하게 비판했을까. 그는 노동부장관 출신이다. 기간제·파견근로자법을 입법할 땐 노사정 협상도 여러차례 했다. 그 때마다 노동계와 정치권을 비판했다. 재임시절 항공사 조종사가 파업하자 교통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당시 "긴급조정권은 노동부 장관의 권한이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며 비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장관 임명장을 받으며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도 노동행정에 개입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고, 퇴임할 땐 "법과 원칙을 지켜달라"고 마지막 당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노사정위원장이 된 뒤 노동개혁 협상을 진두지휘하며 본지와 인터뷰에서 "정치적 인물이 내각과 협상판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 김 위원장이 10일 기자브리핑을 통해 정부를 비판한 것은 이런 연장선상에서 나온 소신이다. 지금 상황이 비정규직 문제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문제를 해결하고 바꾸려는 본질적인 개혁 노력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치적에 휘둘리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고용노동부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이기권 장관은 김 위원장이 장관 재직시절 처음으로 지방청장(광주지방노동청장)을 지내는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누구보다 노동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특히 취임 전부터 호봉제 중심인 임금체계를 역할과 직무, 성과중심으로 바꿔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강한 뜻을 피력했다. "이것 만큼은 제대로 하겠다"는 다짐을 여러차례 했다. 그러나 고용부 내에서조차 "기재부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4월까지의 협상 때는 고용부 담당 국장이 기재부에 "협상 사안을 흘리지 말라"며 강하게 항의하는 등 자주 충돌을 빚었다. 취업규칙 변경과 저성과자 해고 지침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도 기재부에 의해서다. 그게 어느새 노동개혁의 상징이 됐다. 정부의 상징이 된 이상 고용부도 물러설 여지가 없게 됐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결선투표까지 가는 난항 끝에 위원장에 당선됐다. 그가 1차 투표에서 얻은 표는 대의원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기엔 부족한 기반"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래서 내부 여론을 수렴하는데 정성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노사정 협상에서 합의를 하더라도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내부 반발이 거센 상황에서 무작정 정부의 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여기에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옛 재정경제부 차관을 역임했다. 정부 지침이 아니라 노동개혁은 핵심 사안을 법제화해야 의미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정부가 지침으로 제어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자 실망하고 있다. 통상임금처럼 지침을 따르다 법원에서 패소하면 기업이 고스란히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노동계와 정부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계속되면 노정이 적당히 타협해 경영계에 부담을 지우고 타협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각자가 모두 생각도 동상이몽이고 처한 상황도 가지각색이다. 노사정 대타협이 난항을 거듭하는 이유다. 그래도 노사정이 "미래를 위해 노동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데는 공감하고 있다. "어렵더라도 타협이 될 것"이라는 김대환 위원장의 말은 그래서 나왔다.

김기찬 선임기자·하남현 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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