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현장]농식품부에 김영란법 개정하라? 번지수 잘못찾은 의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은 1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다.

새누리당 김종태(경북 상주) 의원=“제가 장관께 금년 추석에 유명한 상주곶감을 하나 보냈다면, 뇌물인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김 의원=“2009년 공무원 행동강령에 선물 한도를 3만원으로 지정해서 적용해왔다. 6년이 지났다. 관혼상제가 있을 때 솔직히 장관은 축의금 얼마 내나.”
이 장관=“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3만원은 좀 민망할 때가 있다.”

김 의원=“당장 화훼농가 매출이 (김영란법 제정이후) 1조원에서 7000억원으로 줄었다. 시행도 안하는 법 하나 때문이다. 이래도 김영란법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나.”
이 장관=“심각한 소비 위축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고 본다.”

김 의원=“심각하면 장관은 이 법을 개정할 용의가 있나.”
이 장관=“(김영란법) 취지에 대해선 공감합니다만….”

이날 국감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김영란법에 규정된 '금품'에서 농축수산물은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승남(전남 고흥·보성) 의원은 “아무리 입법 취지가 좋아도 사회적 약자인 농ㆍ어가에 피해를 주는 법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장관이 “지금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국회의 요구사항 아니냐"는 취지로 반문하자 김 의원은 “일부에선 시행령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한다”며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농어촌을 지역으로 둔 의원들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발언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을 만들어낸 건 국회다. 이날 정부를 다그친 의원들은 정작 지난 3월 국회에서 김영란법이 통과될 때 어땠을까. 김종태 의원은 표결에 불참했고, 김승남 의원은 찬성표를 던졌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란법의 시행령을 만드는 주체는 농식품부가 아닌 국민권익위원회다. 이 장관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머뭇거린 이유다.

김영란법의 불똥이 튄 농식품부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농식품부의 한 간부는 “농식품부에서 권익위나 국회에 농축산업계가 걱정하는 부분을 꾸준히 전달해왔는데 국감에서 농식품부를 거꾸로 몰아세우니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농식품부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농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시행될 필요가 있다는 데는 공감한다”며 “하지만 법 개정이나 시행령 제정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 않다 보니 업계 의견을 관철시키는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런 점 때문에 머쓱했는지 김종태 의원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마디 보탰다.
“국회의원이 법을 잘못 만들어놓고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다고 생각한다”고.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