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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낭만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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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파란, 장영규

[인터뷰│두 1000만 영화 빛낸 음악 장인]1930년대의 낭만에 대하여
‘암살’ 달파란·장영규 음악감독

영화음악은 종종 ‘화룡점정’으로 표현된다. 영화를 완성하는 가장 마지막 공정이자, 핵심 과정이기 때문이다. ‘암살’의 음악을 맡은 달파란(강기영·49)·장영규(47) 음악감독은 스크린에 웅장하고 낭만적인 선율을 얹어 영화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암살’에 삽입된 음악은 70여 곡.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 등 고전부터 두 감독이 직접 만든 40여 곡의 자작곡까지 다양하다. 여러 장르가 섞여 있지만, 모든 곡은 일정한 톤으로 조율했다.

장 감독은 “관객이 낭만적 정서를 느끼도록 하는 게 관건”이었다고 말했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를 ‘낭만’으로 잡은 것이다. 극 중 안옥윤(전지현)과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이 상하이 미라보 여관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은 로맨틱한 분위기가 돋보였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 삽입된 덕분이다. 또 간헐적으로 흐르는 밝고 경쾌한 유모레스크는 영화 전체의 긴장을 이완시킨다.

비장한 장면에도 낭만적 감성이 묻어난다. 암살 작전을 앞둔 이들이 아네모네 카페에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장면은, 퇴폐미와 허무주의가 만연했던 그 시대의 애틋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곡은 프랑스 배우 장 가뱅(Jean Gabin)이 부른 ‘레오, 레아, 엘리(Leo, Lea, Elie)’. “장 가뱅의 호탕한 목소리가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들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모습에 어울리는 곡을 선정했다.” 달파란 감독의 설명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에 어울리는 전체적인 선율을 구상한다. 해당 장면에 어울리는 곡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과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장영규) 영화에 어울리는 가장 적절한 곡을 찾는 과정은 수정이 거듭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악의 특성상, 딱 떨어지는 공식이 없고, 취향과 주관에 따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동훈 감독이 음악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두 감독을 집요하게 괴롭힌(?) 이유다. “영화음악은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소리와 소리가 충돌하거나 서로 방해하면 안 된다. 특히 ‘암살’은 총 소리, 폭탄 소리 등 다양한 사운드가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소리가 과잉될 위험도 있었다. 이를 정교하게 다듬고, 서로 어우러지도록 하는 데 공을 들였다.”(달파란) 고전 악기를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끈다. 브라스, 팀파니를 활용해 우아한 선율을 만들어 낸 것. “1930년대의 거리·의상·건물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대 풍경을 사실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고전 스타일로 만들었다.” 장 감독의 말이다.

영화음악의 매력은 다양한 사운드, 감독과의 소통

두 음악감독은 ‘도둑들’(2012)에 이어 최 감독과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특히 장 감독은 ‘타짜’(2006) ‘전우치’(2009) 등을 통해 최 감독과 여러 번 함께 작업했다. 달파란 감독은 ‘나쁜 영화’(1997, 장선우 감독)로 영화 일을 시작했고, 장 감독은 ‘링’(1999, 김동빈 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작가주의 감독의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장 감독은 박찬욱 감독(복수는 나의 것)·김기덕 감독(해안선)과 함께했고, 달파란 감독은 장선우 감독(거짓말)과 작업하며 입지를 다져 왔다.

이들이 처음 호흡을 맞춘 영화는 ‘알 포인트’(2004, 공수창 감독). 2002년, 달파란 감독이 장 감독과 함께 영화음악 그룹 ‘복숭아 프레젠트’를 만들어 본격적인 영화음악 활동을 시작한 때다. “영화는 대중 매체라는 점에서 음악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폭이 넓다. 특히 TV와 달리 극장은 저음 등 다양한 사운드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달파란) “영화음악은 감독과 소통하며 창작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자극을 받을 때가 많다.”(장영규)

둘은 현재 영화음악 외의 분야에서도 활동이 활발하다. 달파란 감독은 시나위와 H2O 출신의 베이시스트로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록 밴드 ‘삐삐밴드’로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펑크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고, 디제잉도 즐겨한다. 장 감독은 97년, 위악적인 창법으로 골수팬을 확보하고 있는 어어부 프로젝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최근엔 국악과 서양음악의 이종교배를 시도한 다원극 ‘이종공간’을 통해 낯설지만 신선한 음악을 들려줬다. ‘첨단 뮤지션’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시도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한 창작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어디서 음악적 영감을 얻을까. “음악을 듣지 않는 게 최고의 영감이다(웃음). 지치거나 피곤하면 다 내려놓고 무작정 걷는다. 산책은 최고의 영감이다.”(달파란) ‘굉장히 치열하게’ 작업한다고 소문난 그에게 퍽 어울리는 대답이다. 반면 장 감독은 다른 문화 장르를 탐구한다. “소설, 그림 등 다른 장르를 통해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결국 창작은 기존의 것을 조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퓨전을 추구해 온 예술가다운 대답이다.

달파란 감독과 장 감독은 ‘따로 또 같이’ 하는 작업을 지향한다. 함께 참여하는 작품도 있지만, 개별적으로 다른 작품에도 참여한다. 달파란 감독은 강동원 주연의 ‘가려진 시간’(엄태화 감독)과 제작 준비 중인 홍상수 감독의 차기작에서 음악을 맡을 예정이다. 장 감독은 ‘곡성’(나홍진 감독)과 ‘부산행’(연상호 감독)의 음악을 담당한다.

<나를 토닥여주는 음악>

창작을 위해 싫어하는 노래도 일부러 듣는다. 그래서 위안곡이 필요하다. 멕시코 그룹 트리오 로스 판초스(Trio Los Panchos)가 부른 ‘베사메무초’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달파란(왼쪽)여러 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 중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빈센트 갈로가 부른 ‘웬(When)’을 좋아한다.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다. 장영규

글=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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