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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화여고 100년 역사 과학관, 기숙사 신축으로 철거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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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화학원이 지어진 지 100년 된 과학관 건물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남녀공용 기숙사를 짓겠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배화여고 교사들과 학생ㆍ동문 등 330여명은 ‘100년 역사 배화과학관 지킴이’(이하 지킴이)란 단체를 만들어 철거에 반대 중이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 위치한 배화여고 과학관은 1916년 여자 선교사인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이 건립했다. 캠벨 선교사는 미국 남감리교회 소속이며 이 교단 최초로 1897년 조선에 파견됐다. 그는 도착 직후인 내자동 인근에 1898년 여성 기숙학교인 ‘캐롤라이나 학당(현 배화학당)’을 창설했다. 현 과학관은 1915년 학당이 누하동 149번지로 이전하며 이듬해 지어졌다. 건축 당시엔 2층이었다 1922년 두 층을 더 올려 현재의 4층 건물이 됐다. 현재는 배화여고 학생들이 과학 실험을 하고 미술 수업을 받는 용도로 쓰인다.

논란은 학교법인인 ‘배화법인’이 지난 6월 5일 열린 이사회에서 배화여대의 신규 기숙사 부지를 변경하기로 의결하며 시작됐다. 당초 이사회는 지난 4월 기숙사를 누하동 114번지에 신축하기로 했지만 이 부지가 대학 시설 조성에 대한 서울시 기준에 저촉돼 건물을 세울 수 없게 됐다. ‘저층 주택가와 인접한 곳에 짓는 학교 건물은 학교 경계선에서 안쪽으로 10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에 이사회에서 김숙자 배화여대 총장이 제안한 “중고등학교가 쓰고 있는 과학관 건물이 노후돼 어차피 신축해야하니 기숙사 부지로 활용하자”는 안건을 전원 찬성으로 의결했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배화여고 유환옥 교장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1900년대 초기 한국 근대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담겨있어 문화유산 측면에서 보존할 가치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2003년 배화여고의 본관과 과학관, 생활관 등 건물 3개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배화법인이 본관과 과학관에 대해 지정거부를 해 생활관만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됐다.

김희선 지킴이 단장은 “당시 문화재청이 조사한 조사서에 따르면 과학관은 내부의 일부를 콘크리트 개축한 것 외에 당시 건축양식을 잘 보존한 건물로 인정받았다”며 “2013년에 실시한 안전진단 검사에서도 종합평가 B등급을 받은 만큼 개축할 필요 없이 보존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당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생활관과 본관은 안전평가에서 이보다 한 단계 낮은 C등급을 받았다.

지난 3일 오전 지킴이 측은 교내에 ‘기숙사 신축 반대’ 현수막을 걸고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배화법인 측 관계자가 지킴이 측을 ‘무단침입’ 혐의로 경찰에 신고해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결국 지킴이 측은 현수막을 자진철거했지만, 현재 포털사이트인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 운동을 진행하는 등 철거 반대를 위한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배화법인은 9일 오전 임시이사회를 열어 배화여대 내 남녀공용 기숙사를 짓는 안건과 과학관 철거에 대한 안건에 대해 재검토할 예정이다.
조혜경 기자 wiselie@joongang.co.kr
[사진 100년역사배화과학관지킴이]

◆사진설명
1. 1916년 캠벨 선교사가 건립한 배화여고 과학관의 모습.
2. 지난 3일 오전 배화여고 학생과 동문 등 5명이 과학관 철거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3. 재작년 안전등급 평가에서 과학관은 종합평가 B등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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