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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세 살배기 사진에 … 전 세계서 “난민 보호” 한목소리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3호 7 면

5 터키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

사진 한 장이 유럽의 난민 정책을 바꾸고 있다. 2일(현지시간)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해변에서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 얘기다.


 파도에 쓸려와 엎드려 잠든 듯한 모습으로 발견된 아일란의 모습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SNS엔 전 세계에서 아일란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림과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다. “난민들에게 거처를 제공하자”는 캠페인도 SNS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해외 유명 인사들도 유럽 국가들이 더 많은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며 이민 정책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은 트위터에 “당신이 (난민) 보트 중 하나에 타고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없다면 그건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삶을 위해 죽어가고 있다”고 썼다. 영국의 배우 에마 톰슨은 BBC에 출연해 “난민들이 만약 유럽인이고 백인이었다면 영국은 지금과는 훨씬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며 “난민들에게 문을 더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MS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시리아의 난민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고 했다.

2 93년 케빈 카터가 찍은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

3 36년 로버트 카파가 찍은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

 한 장의 사진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사례는 종종 있다. 1993년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찍은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이라는 사진은 아프리카 수단의 참혹한 현실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굶주림에 쓰러진 흑인 소녀와 그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뉴욕타임스에 게재되자마자 전 세계에 충격을 줬고, 이후 많은 국가에서 아프리카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게 된 계기가 됐다. 날아온 총알에 맞아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포착한 로버트 카파의 사진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세계인에게 적나라하게 고발한 걸작으로 꼽힌다.


 2010년 8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는 코와 귀가 잘린 아프가니스탄 여성 아이샤 모함메드자이의 사진이 실렸다. 아프간 여성의 끔찍한 인권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린 순간이었다. 이 사진은 당시 미군 철수 계획과 맞물려 아프간 내에서 철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 1960년 4월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발견된 김주열.

6 87년 6월 교내시위 중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이한열.

 국내에서도 한 장의 사진이 민주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60년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가했다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당시 마산상고 1학년)의 시신 사진이 대표적이다. 당시 부산일보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 사진은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또 87년엔 시위 도중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연세대생 이한열의 모습을 찍은 외신 사진이 민주화 항쟁의 기세를 결집시켰다.

4 73년 닉 우트의 퓰리처상 수상작 ‘베트남-전쟁의 테러’.

 아일란의 사진은 베트남 소녀 킴 푹(Kim Phuc)의 사진에 맞먹는 파급력을 지녔다는 평가도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72년 6월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리는 그의 모습은 미국 반전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영국 일간 익스프레스는 “40여 년 전 푹의 사진으로 미국 시민이 전쟁의 공포를 직면하고 반전 시위에 나섰다”며 “아일란의 사진도 난민 사태에 유사한 수준의 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일란의 사진에 이어 “전쟁을 멈추게 해달라”는 시리아 소년의 호소가 담긴 인터뷰 영상이 공개되면서 유럽 내에는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바뀌고 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켈레티 역에서 독일행을 기다리던 시리아 소년 키난 마살메흐(13)와의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그는 “지금 시리아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다”며 “단지 전쟁을 멈추게 해주세요. 우리는 유럽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아요. 전쟁만 멈춰 주세요. 그게 전부예요”라고 말했다. 이 영상은 사흘 만에 조회 수 124만 건, 공유 1만5000건을 기록했다.


 난민들을 위한 국가를 만들 수 있도록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섬을 사주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집트 오라스콤의 나기브 사위리스 회장은 트위터에서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섬을 팔면 이곳에 난민들을 수용해 직업을 제공하면서 그들만의 새로운 나라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주영·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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