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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폭력과 언론 자유의 차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3호 30면

8월28일 산케이(産經)신문이 인터넷판 칼럼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해 한국 국민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카토 데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박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한국에서 기소당하자 재판을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의도로 산케이는 아예 한국 대통령을 협박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성황후는 1895년 10월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 등 일본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살해된 비운의 황후다. 나는 일본에서 대학교 시절 이 역사적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잔인했는지는 몰랐다. 혹시 반대로 일본의 황후가 외국 세력에 의해 살해당했다면 일본인들은 절대 그 나라나 민족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한민족이 일본에 대해 품고 있는 분노의 본질을 느낀 것 같았다. 이후 나는 ‘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는가’ 하는 큰 숙제를 풀기 위해, 그리고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했다.


그런데 산케이는 박 대통령이 중국의 전승 70주년 행사와 열병식에 참가한 사실을 놓고 ‘명성황후가 친러였다는 사실과 같다’면서 그 때문에 명성황후는 암살당했다는 식의 칼럼을 실었다. 쓴 사람의 정신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칼럼을 태연하게 실은 산케이 신문사 전체에 대한 정신감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변명을 늘어놓아도 새벽에 남의 나라 왕궁에 쳐들어가 궁녀들을 발견하는 대로 죽이고 마지막에 명성황후를 살해하면서 암살 작전에 가담한 많은 일본인들이 ‘내가 황후를 죽였다’고 서로 성과를 자랑했던 것은 일본의 광기의 역사다. 그들은 황후로 보이는 여성의 유해를 불태웠고, 타다 남은 뼈를 경복궁 연못으로 버렸다는 얘기까지 남겼다. 그런 피 묻은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박 대통령을 명성황후에 비유하면서 신변의 위험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칼럼을 실은 산케이는 규탄 받아 마땅하다.


한국의 국모를 죽이고 수많은 한국 여성들을 성노예로 전쟁터에 끌고가 많은 이들을 전쟁터에 남겨 죽게 만든 것도 일본이다. 그런 억울한 역사를 한국인에게 다시 연상케 한 산케이의 죄는 무겁다.


북한의 지뢰 도발로 시작된 남북 긴장상태가 풀린 배경에는 북한을 압박해 한국을 지원한 중국의 협력을 빼놓을 수 없다. 즉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이 일본을 버리고 중국과 붙는다는 식의 근거없는 이상한 국제적 ‘질투’를 산케이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칼럼에 실었다. 박 대통령의 방중은 남북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한 결단에서 나온 행동이다. 미국은 ‘박 대통령이 방중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는 언론 보도를 공식 부정했다. 사실이 이런데도 산케이는 통찰력이 대단히 떨어지는 신문인 것 같다.


한국은 한·미 관계가 기축이라는 메시지를 항상 말과 행동으로 미국에 전달해 왔다. 산케이는 일본 중심의 좁은 시야로밖에 한국의 행동을 볼 수 없는 한계를 스스로 노출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 개선에 일본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성하는 칼럼이라도 싣는 게 순리가 아닐까.


이번 칼럼을 통해 산케이는 용서받지 못한 죄를 저질러 놓고도 그 사실을 왜곡하고 정당화해 가면서 한국의 최고 지도자를 협박까지 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산케이의 행태가 대부분의 일본인의 행태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한·일관계를 악화시켜 온 장본인은 아베 정권이 아니라 산케이신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악한 칼럼을 쓴 산케이는 한국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머리숙여 사죄하고 문제의 칼럼을 하루속히 삭제해야 한다.


언론 자유 운운하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언어의 폭력과 언론의 자유를 혼동하면 안 된다. 잘못을 보도하면 사죄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산케이가 적어도 양식 있는 언론사라면 자유에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초보적인 진리를 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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