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취업난·가족해체 … 시대의 그늘 짙어진 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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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열린 제16회 중앙신인문학상 예심 장면. 1500명이 응모했다. 왼쪽부터 강동호·백가흠·손택수·백민석·백지은·김도연·윤성희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국문단을 이끌어 갈 새 얼굴을 찾는 가을 문학축제, 제16회 중앙신인문학상이 예심을 마쳤다. 시 13명, 단편소설 16명, 문학평론 8명, 모두 37명의 응모작이 본심에 진출했다. 시는 710명, 단편소설은 857명, 문학평론은 29명이 작품을 보내와 전체 1596명의 응모작들 가운데 가려 뽑은 결과다.

 심사위원들은 시 응모작들은 ‘스타일의 제도화’, 소설 응모작들은 ‘만연(蔓延)한 가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평했다. 시의 경우 기성 시인 못지 않게 세련된 작품이 많아 화려한 스타일이 일반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지만 내용 면에서도 깊이와 무게를 두루 갖춘 작품은 드물었다는 얘기다. 소설은 취업난, 가족 해체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한국사회의 문제점들이 대거 ‘창작 공방’ 안으로 치고 들어왔다는 진단이다.

 10대 소녀와 90대 할아버지, 교도소 수감자 등 약방의 감초처럼 신인문학상을 장식하는 이색 응모자도 보였다.

 시 예심은 시인 손택수씨와 문학평론가 강동호씨, 소설 예심은 소설가 김도연·백가흠·백민석·윤성희씨, 문학평론가 백지은씨가 했다. 평론 예심은 강동호·백지은씨가 나눠서 했다.

 영예의 당선작은 오는 22일 중앙일보 창간기념일에 즈음해 발표한다. 중앙신인문학상은 LG그룹이 후원한다.

 ◆사라지는 서정시=2일 예심을 마친 후 손택수씨는 대뜸 “태양이 너무 눈부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상태와 같은 작품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미지를 촘촘하게 배치해 화려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 경향이 지나쳐 정작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작품들을 그렇게 평한 것이다. 손씨는 “시를 뜨게 하는 언어의 부력과 시의 중심을 잡아주는 삶의 중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시가 나올 텐데 부력은 두드러지지만 중력은 부족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라고 했다.

 그런 현상을 강동호씨는 스타일의 제도화로 표현했다. 세련된 스타일이 대세(제도)로 느껴질 만큼 내용보다 기량이 승한 작품이 흔하다는 설명이다. 강씨는 특히 “40대 이상 나이 든 사람들의 응모작 가운데도 모던한 느낌의 작품이 많았다”고 했다. 대학 등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 선생들이 주로 젊은 느낌의 모던한 시를 가르친 결과다.

 그래서 위기에 몰린 건 전통 서정시다. 소수, 타자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강씨는 “형식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피로감은 없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삶의 고통 생생한 소설=윤성희씨는 “치킨·비빔밥·라면 등 서민적인 음식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았다”고 전했다. 중·상류층을 그린 작품이 드물다는 얘기다. 소설가 지망생들이 취업난에 시달리거나 가정 해체로 고통 받은 자신의 경험 혹은 주변의 얘기를 쓰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진단이다.

 10년 이상 문단을 떠나 있다 몇 해 전 복귀한 백민석씨는 “하루키가 한창 인기 있던 1990년대에는 여유로운 삶을 그린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젠 찾아볼 수 없다. 하루키 이전 가난하던 70∼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백가흠씨는 “가족 구성원 중 하나가 실종되는 설정이 많았다”고 했고, 백지은씨는 “가볍게라도 남녀의 사랑 얘기를 찾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만큼 살기 어려워졌다는 반증 아니겠느냐는 거다.

 김도연씨는 “고립과 고통을 자처하는 듯한 인상의 작품들이 있었는데 그런 모색이 어떤 결과를 낼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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