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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금리 낮춰주니 연체 늘어 ‘서민금융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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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조민근 기자 중앙일보 경제산업디렉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연 10%대 중금리 대출을 하는 서민금융 전담기관을 만들어 서민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일 국회 대표 연설에서 한 제안이다. “금융회사 못지않게 금융 당국의 보신주의가 심하다”는 질책도 덧붙였다. 답답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 4대 구조개혁이 지지부진한 데다 그나마 금융개혁에서도 당장 체감할 수 있는 ‘화끈한’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김 대표의 말대로 국내 신용대출 시장은 한 자릿수 저금리의 은행권 대출과 연 20% 이상의 고금리 제2금융권 대출로 양극화돼 있다. 10%대 중금리 시장이 없다는 건 우리 금융 생태계가 건강치 못하다는 결정적 증거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서민전담 금융기관을 만드는 게 올바른 처방일까.

 유사한 취지로 만든 정책금융상품인 ‘바꿔드림론’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바꿔드림론은 고금리 대출을 8~12%의 시중은행 대출로 바꿔주는 상품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서민금융 대책으로 등장해 올 7월까지 22만406명이 이용했다. 대출자들이 무는 금리는 평균 34.4%에서 10.8%로 대폭 내려갔다. 그런데 이자가 줄었지만 돈을 못 갚는 사람들은 오히려 급증했다. 3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김정훈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연체자 비율은 31.1%에 달한다. 대출자 셋 중 한 명은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기록적인 부실이 생긴 원인을 전문가들은 ▶모럴해저드를 유발하는 정책상품의 구조 ▶상환 능력 제고 대책이 빠진 한계 등에서 찾고 있다. 금리를 낮추려면 대출자의 부족한 신용을 누군가 대신 메워줘야 한다. 캠코의 국민행복기금이 ‘100% 보증’을 해주며 그 역할을 했다. 돈 떼일 걱정이 없어진 은행은 보증서만 있으면 대출을 내줬고 채권 관리에도 무심했다. 그 결과 재원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017년이면 고갈될 것이란 추산이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정부가 나서 금리를 깎아주는 서민금융 정책이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 고 말했다.

 정치권이 금융개혁의 과정을 부단히 감시하고 속도를 높이도록 채근할 필요는 있다. 진입 규제가 강한 산업의 속성상 언제든 금융 당국과 기존 금융사들의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금리·수수료 등 당장 눈에 띄는 결과를 닦달하다간 개혁 방향 자체가 틀어질 수 있다. “코치가 아니라 심판이 되겠다”는 금융 당국의 다짐이 흔들리면 필드로 뛰쳐나가려는 욕구를 누르기 어렵다. 그러면 금융회사들은 다시 납작 엎드리고 개혁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조민근 경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