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마디]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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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집『걷는 듯 천천히』중에서

워낙 감동적인 극영화를 여럿 만든 감독이라서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그가 본래 TV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사람이란 걸. 이제 막 번역출간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영화보다 방송, 픽션보다 다큐가 그의 정체성에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이 에세이집에는 그의 개인사와 영화 얘기만 아니라 방송과 다큐, 나아가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대한 그의 시선이 번득입니다. 문장도 매력적입니다. 말투는 참 쉽고 겸손한데, 할 말은 확실하게 합니다.

앞에 인용한 구절은 이 책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우리가 4개월 전 경험한 것은, 일본 어느 곳에 사는 지에 관계없이,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한 것을 외면하고 잊은 척하며 내달려온 문명을 근본부터 되묻는 사건이었다. 그 풍경을 앞에 두고, '미래'나 '안전'보다도 '경제'를 우선시하는 가치관이 경멸스럽다." 2011년에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재가동에 대해 쓴 글입니다만, 일본의 얘기로만 들리지는 않네요. 때이른 망각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두고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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