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당한 충격에 두 딸 자살했지만…법원, “성폭행 인정되지만 손해배상 소송 시효 지나 배상은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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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조출연자 관리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성 보조출연자의 어머니가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소송 시효가 지나 배상받지 못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72단독 곽형섭 판사는 장모씨가 W사 보조반장 이모씨 등 12명을 상대로 낸 1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일 밝혔다.

장씨 큰 딸인 A씨는 연기자 지망생인 동생 B씨의 권유로 2004년 무렵부터 방송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런데 W사 관계자들은 A씨를 감금해 성폭행하고, 반항하면 동생을 팔아넘긴다는 등 협박을 일삼았다. 이들은 드라마 세트장 으슥한 장소나 세트장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A씨를 추행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A씨는 2004년 12월 이들을 성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A씨는 경찰조사 과정에서 “다시 그 사건들을 기억하는 게 참을 수 없다”며 고소를 취하했고 사건은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다. 이후 A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지난 2009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동생 B씨는 이 사실을 알고 정신적 충격으로 한 달 뒤 언니를 따라 목숨을 끊고 말았다. 비극적인 자매의 죽음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며 이 사건은 지난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어 장씨는 딸을 유린한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곽 판사는 1년이 넘는 심리 끝에 W사 관계자들의 A씨에 대한 성폭행 사실은 인정했다. 곽 판사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시점부터 A씨의 정신과적 증상이 심해진 것으로 보여 이 무렵 어떤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지도 않았던 A씨가 비슷한 시기에 직장 동료인 이씨 등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씨는 두 딸의 죽음에 대한 손해배상은 받지 못하게 됐다. 곽 판사는 “소송은 A씨가 성폭행을 당한 때로부터 9년 6개월, 두 자매가 자살한 때로부터 4년 6개월이 지나서 제기됐다”며 “3년의 소멸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제시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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