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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3000’ 적힌 여비서 다이어리, 포스코 로비 흔적 잡아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검찰이 수사 중인 포스코 비리 사건에서 배성로(60) 전 동양종합건설 대표의 전 여비서가 작성한 다이어리가 사건의 실마리로 떠올랐다. 검찰이 다이어리에 적힌 내용을 근거로 포스코건설 관계자를 추궁한 결과 “배 전 대표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진술이 확보됐다.

 27일 검찰과 철강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는 지난달 초 동양종건 본사 압수수색에서 서너권 분량의 ‘여비서 다이어리’를 확보했다. 여기에는 배 전 대표가 2011년부터 최근까지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다. 2011년 상반기의 어느 날 일정에는 포스코건설의 국내외 플랜트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임원 A씨의 실명과 그의 서울 출장 일정이 적혀 있고, 그 옆에 ‘5만, 3000’이라는 글자가 써 있다. 검찰은 이게 ‘5만원권으로 3000만원을 준비하라’는 지시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그해 5월에도 ‘A씨 미팅’ 일정이 등장한다. 검찰은 A씨를 소환해 다이어리 기록을 추궁해 “배 전 대표가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딸 결혼식 축의금’이라며 5만원권으로 5000만원이 담긴 쇼핑백을 주고 갔다”는 자백을 받았다.

 검찰은 앞서 포스코건설 임직원들에 대한 소환조사에서 “정준양 전 회장이 2010년 3000억원대 인도 마하라슈트라주 CGL(아연도금강판) 플랜트 건설 사업 전체를 동양종건에 맡기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 사업을 총괄했던 A씨는 “처음에 지시가 내려왔을 때는 나 역시 ‘해외 공사 경험이 전무한 동양종건에 모든 공정을 맡길 수 없다’며 반대했지만 정 전 회장의 의지가 워낙 강해 일부를 동양종건에 맡겼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동양종건은 이 사업에서 850억원의 공사를 수주했다. 이런 조사 내용은 지난 21일 배 전 대표의 영장실질심사에서 배임증재 혐의의 증거로 제시됐다.

 검찰은 지난 18일 배 전 대표를 재소환하면서 다이어리 작성자인 전직 여비서도 출석할 것을 요청했지만 불응했다. 또 A씨가 “다이어리에 ‘3000’이라고 표시된 돈은 모른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 돈이 포스코의 다른 고위층에게 흘러갔는지를 수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법원이 최근 배 전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만큼 다툼의 여지는 남아 있다. 배 전 대표는 “돈을 건넨 사실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동양종건 관계자는 “배 전 대표가 A씨에게 통상적인 결혼 축의금을 전달한 적은 있지만 현금 5000만원을 준 적은 없다”며 “다이어리에 적힌 시간, 장소가 축의금 전달 내용과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지난 2008년 ‘박연차 게이트’ 당시 정권 실세 등에 대한 로비 내역이 적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여비서 다이어리가 발견되면서 수사가 탄력을 받았다. 올 상반기 ‘성완종 리스트’ 사건 때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일정이 적힌 다이어리가 발견됐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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