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비리 김양 ‘전관변호사 쇼핑’ 법원이 좌절시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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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해상작전 헬기 ‘와일드캣(AW-159)’ 도입 과정에서의 비리 혐의로 지난달 구속기소된 김양(62·사진) 전 국가보훈처장이 또 다시 ‘전관(前官) 변호사’를 선임했다가 자진 철회했다.

 25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김 전 처장은 담당변호사로 선임했던 법무법인 광장의 박재현 변호사에 대한 지정철회서를 지난 21일 재판부에 제출했다. 광장 측은 “재판 쟁점이 아닌 다른 논란으로 주목받는 걸 의뢰인이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김 전 처장이 전관 변호사 선임 문제로 구설에 오른 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이달 초 자신의 사건이 엄상필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형사합의21부에 배당되자 엄 부장판사의 고교 선배인 법무법인 KCL의 최종길 변호사를 담당변호사로 선임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이 ‘법관과 개인적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 선임으로 재판 공정성에 대한 오해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재판부를 형사23부로 교체하자 최 변호사 선임을 철회했다. 하지만 김 전 처장은 곧이어 새 재판장인 현용선 부장판사와 서울고법·제주지법·인천지법 등에서 세 차례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는 판사 출신의 박 변호사를 선임했다. 재판부 재배당에도 불구하고 또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며 ‘변호사 쇼핑’을 한 것이다.

이에 법원은 재판부를 다시 바꾸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법원 관계자는 “그 경우 재판 일정이 밀려 구속기간이 연장돼도 피고인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결국 김 전 처장은 박 변호사를 선임한 지 4일 만에 지정을 철회하고, 재판부와 연고 관계가 없는 광장의 다른 변호사를 새로 선임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이달 1일부터 시행 중인 ‘재판부 재배당 활성화 대책’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책은 서울중앙지법의 10개 형사합의부에 접수되는 사건의 변호인이 재판장 또는 재판부 소속 법관과 일정한 연고 관계가 있을 경우 다른 재판부로 사건을 재배당하는 게 골자다. 전에도 이런 방안이 추진된 적은 있었으나 실효가 없었다. 이번엔 연고 관계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제시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재판부 소속 법관과 변호사가 ▶고교 및 대학(원) 동문 ▶사법연수원(법학전문대학원) 동기 ▶같은 직장 근무 경력자일 경우 재배당한다.

 자발적인 재배당 요청도 늘고 있다. 지난해 재판부가 변호인과의 연고 관계를 들어 재배당을 요청한 사례는 0건이었다. 올 들어서도 지난달까지 없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재배당 요청 사례는 김 전 처장 사건을 포함해 총 6건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기소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도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변호사를 선임했다가 재판부가 재배당됐다. 99억여원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한 혐의로 최근 재판에 넘겨진 전 호텔신라 직원 A씨도 재판장과 같은 대학 동기인 변호사를 선임했다가 재판부가 재배당을 요청해 다른 재판부로 바뀐 경우다.

 변호사들도 재배당 대책을 환영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지난 4~13일 회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1236명) 중 57%(704명)가 재배당 제도가 법조계의 전관예우와 연고주의를 타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45.4%(561명)는 대법원에서도 재배당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김한규 서울변회 회장은 “형사사건에서 의뢰인이 전관 변호사부터 찾는 관행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며 “뿌리 깊은 전관예우 관행을 없애려면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도 재배당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신중한 입장이다. 고등법원의 경우 형사재판부가 적어 무한정 재배당을 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피고인이 재판부 변경을 노리고 일부러 재판장과 연고 있는 변호인을 선임해 제도를 악용할 소지도 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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