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시 약제비도 입원비로 인정, 실손보험 보상 늘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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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폐암 환자로 4년 가까이 투병중이던 김모(34)씨는 2013년 여름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경구용(먹는) 표적항암제 처방을 받았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았다. 퇴원과 동시에 같은 약에 대해 추가 처방을 받았다. 이후 김씨는 실손의료보험을 가입한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해 20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초 김씨는 보험사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보험사는 퇴원시 추가 처방받은 약제비는 입원의료비가 아닌 통원의료비에 해당한다며 이미 지급한 보험금을 되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보험사가 이렇게 소송을 제기한 건 약관상 입원의료비에 해당할 경우 한번에 최고 5000만원까지 보상받을 수 있지만, 통원의료비일 땐 하루에 많아야 30만원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분쟁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이르면 연내 실손의료보험에서 보상받는 퇴원시 약제비는 통원의료비가 아닌 입원의료비로 인정해 한도가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24일 ‘국민 체감 20대 금융관행 개혁 과제’ 중 실손보험 가입자의 권익을 높이는 방안을 내놨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고액의 약값 때문에 치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늘고 있다”며 “일부 보험사의 실손보험금 지급 거절로 그동안 절망했던 가입자에게 희망을 준 개선책”이라고 말했다.

 퇴원시 약제비 개선과 함께 눈에 띄는 대목은 정신과 질환에 대한 보장 확대다. 그동안 정신 질환은 진단이 주로 환자의 진술과 행동에 의존하고, 증상도 점진적으로 나타나 정확한 발병 시점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실손보험 보장대상에서 제외돼 정신 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컸다. 이르면 연내부터 증상이 비교적 명확해 치료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일부 정신 질환은 보장 대상에 포함된다. 뇌손상에 의한 인격·행동 장애로 고통받는 정신 질환자의 의료비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실손보험 중복 가입자에 대한 피해 예방책도 마련한다. 불완전판매로 인한 중복가입시 보험사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상품 판매시 가입자의 중복계약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보험사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한다. 해외 장기체류자를 위한 중지제도가 도입된다. 해외에서는 국내 실손보험으로 의료비를 보상받을 수 없음에도 보험료를 납입도록 하는 것은 문제로 지적받았다.

 해외여행보험에 대한 가입자의 선택권도 커진다. 일부 보험사는 그동안 신속한 보험가입을 이유로 해외여행보험을 다양한 보장내용을 일괄 가입시키는 패키지 형태로 판매해 왔다. 앞으로 보험사는 해외여행보험 판매시 가입자가 원하는 보장내용만을 선택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실손보험에 가입한 경우 “국내치료 보장은 가입할 실익이 낮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

 또 가입자가 의료기관과 보험회사 사이 연동하는 전산 프로그램을 통해 간편하게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된다.

 서태종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그동안 제기된 금융 소비자의 민원이나 보험금 지급분쟁 사례를 전면 조사했다”며 “보험금 지급기준을 가입자에게 유리하게 바꿈에 따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실손의료보험=가입자가 질병·상해로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를 받는 경우 실제 부담한 의료비를 보험사가 보상하는 상품이다. 2003년 국민건강보험을 보조하는 민간 보험 형태로 도입돼 현재 가입건수가 3000만이 넘는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자리 잡았다. 연간 보험료 규모는 3조원으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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