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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함 속의 휘황찬란 21세기 눈으로 봐도 경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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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8 면

13세기 고려 때 만들어진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국보 133호·오른쪽)가 쌍둥이 동생을 만났다.왼쪽에 있는 것은 이번 전시를 위해 함부르크미술공예박물관에서 빌려온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로 뚜껑은 소실됐다.연꽃 문양이나 동자상, 개구리 모습이 놀랍도록 섬세하다.

한국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을 규정할 때 흔히 ‘여백의 미’‘자연의 미’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 여유가 아름다움으로 분명 녹아있다. 하지만 이 말을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완성도가 떨어진다, 기교가 부족하다, 정교하지 못하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전시 ‘세밀가귀-한국 미술의 품격’ 전은“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시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예술품을 꼽는 기준은 화려함과 정교함이었으며 우리 전통예술이 기실 얼마나 섬세한지 와서 보시라”고 말한다. 고려를 방문해 나전칠기와 향로 등을 직접 써보고 “세밀함이 뛰어나 가히 귀하도다(細密可貴)” “빼어난 솜씨가 가히 취할 만 하구나(工巧可取)”라고 경탄해 마지 않았다는 송나라 사신 서긍의 말이 과찬이 아니었음을 직접 느껴보라고 말한다.


무려 3년에 걸쳐 기획한 이번 전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전통 문화예술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준다. 리움 소장품에 국내외 미술관 40여 곳에서 빌려온 ‘최고’들을 더했다. 140여 점의 작품 중 국보가 21점, 보물이 26점이다. 말 그대로 휘황찬란하다. 천년 전에 구현된 조상들의 세밀함과 정교함은 첨단 21세기에 살고 있는 후손들이 보기에도 가히 놀랍다.


그럼에도 궁금증이 들 수 있다. 무엇이 어떻기에 최고라는 건지 자세히 보아도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중앙SUNDAY S매거진이 전시를 기획한조지윤 책임연구원과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고미술 전문가들의 해설도 꼼꼼히 읽고 재구성했다.


◇‘세밀가귀-한국 미술의 품격’ 기간: 7월 2일~9월 13일(월요일 휴관) 장소: 삼성미술관 리움 작품: 총 140여 점(국보 21점, 보물 26점) 입장료: 기획전 성인 8000원 (상설전은 1만원, 기획전과 상설전을 모두 볼 수 있는 DAY PASS는 1만4000원)

‘나전 국당초문 경전함’(고려 13세기)ⓒ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나전대모 국당초문 화형합’(고려 12세기) Photographⓒ[2015] Museum of Fine Arts, Boston

‘나전 국당초문 원형합’(고려말~조선초) 도쿄국립박물관, 이미지 TNM Image Archives


최고 장인들의 협업이 만들어낸 나전칠기 고려 나전칠기는 현재 전 세계에 17점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중 8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영박물관, 보스턴미술관,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도쿄국립박물관 등에서 날아온 ‘모란 당초문 경전함’이 차례로 도열한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면서 오랜만에 만난, 앞으로 다시 보기 힘들 이산가족의 상봉을 보는 듯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나전칠기는 다양한 기술이 집약된 예술이다. 역할이 각기 다른 장인 최소 다섯이 힘을 합쳐야 한다. 소목장이 뼈대가 되는 백골을 제작하고, 채취해온 옻칠을 정제하여 바탕칠을 올리면, 전복 껍데기를 가공하는 섭패장을 거쳐 비로소 나전 장인의 솜씨로 완성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고려 나전의 문양 단위는 1cm를 넘지 않는다. 작은 것은 2~3mm에 불과하다. 이렇게 작게 오리고 갈아내어 붙이기 위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연장만 해도 지금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시절 아니던가.


옻칠에는 먼지가 상극이다. 금세 티가 난다. 에도시대 일본에서는 먼지를 피해 호수 중간에 배를 띄워 칠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게다가 최소 7~8회를 거듭 칠해야 비로소 원하는 색이 나고 쓰는데 손색이 없게 된다. 그런데 칠색이 제대로 우러나려면 적어도 2~3년이 걸린다. 장인들은 이를 두고 “옻이 핀다”고 말한다. 옻이 피면 처음에 탁하던 칠빛이 점차 맑고 깊게 변하게 된다.


칠기는 벌레와 균에 강하다. 옻칠 그릇에 담긴 음식은 부패가 느리게 진행된다. 또 복원력이 우수해 웬만한 충격에는 손상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본래 모습으로 회복되는 기능도 탁월하다. 여기에 나전까지 더해지면 기능과 디자인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는, 말 그대로 금상첨화인 것이다.


한국전통문화대 무형유산학과 최공호 교수는 “거칠고 불편한 방법으로 수고를 감내해 완성한 나전칠기는 버려진 조개 껍데기로 명품을 빚어낸 것이니 그 안목과 기술에 찬탄을 금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특유의 영롱한 무지개 색깔은 빛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니 나전은 색이 아닌 빛의 예술”이라고 예찬론을 편다.

‘청화백자 홍치명 송죽문 호’(조선 1489년) 동국대박물관, 국보 176호

‘청화백자 매죽문 호’(조선 15세기) 국보 219호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고려 12세기 전반) Brooklyn Museum Photograph


세계 도자사에 빛나는 이름, 상감청자와 청화백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김재열 총장은 1만년에 걸친 세계도자사에서 청자의 위치는 각별하다고 말한다. 청자가 발달된 나라가 중국과 우리밖에 없다는 것이다. “12세기 초반에 완성된 ‘비색 청자’는 음각, 양각, 투각 등 정밀한 수법을 한껏 구사해 중국과 다른 최고급 청자를 만들었습니다. 온갖 동식물을 모티브로 멋들어진 연적, 주자 등을 만들어낸 상형 청자에 이르면 ‘교탈천공(巧奪天工)’의 솜씨를 여한 없이 보여주죠. 특히 백토로 무늬를 집어넣고 다듬어낸 상감청자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래서 어느 나라 어느 시기의 유적에서 나와도 두말없이 고려의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문양을 볼록하게 드러낸 양각 청자 중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의 ‘죽순형 주자’나 필라델피아미술관의 ‘연지수금문 매병’은 그 수법이 은은하면서도 생기 가득해 신묘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브루클린박물관의 ‘연판문 주자’는 고치를 찢고 날아오르는 나비를 생생하게 표현했는데, 명성황후의 어의였던 릴리어스 언더우드가 고종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구리를 안료로 쓰면 팥죽같이 붉은 색이 나오는데 이를 활용한 청자를 동채(銅彩)청자, 혹은 진사청자라 부른다. 세계 도자사에서도 기술적 창의성이 돋보이는 이 기법이 최고로 발현된 것이 ‘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다. 국보 133호인 이 작품에 대해 김 총장은 “조형적 기발함이나 색채감, 현란하고 정교한 장식수법 등을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면 최고의 명품으로 꼽을 만하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초입 가장 돋보이는 곳에 전시된 이 작품은 삼성전자의 SUHD 기술력이 돋보이는 ‘리움 DID’로 인해 더욱 빛난다. 기존 고화질 확대 및 360도 회전 기능에 상하 회전 기능이 더해져 진열장에서 꺼내보는 느낌을 준다.


자기에 색을 넣는 기법은 조선시대 청화백자로 다시 꽃을 피웠다. 중국에서 수입한 최고급 안료인 산화코발트를 이용해 백자에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청화백자는 최고급 자기였다. 국보 219호인 ‘매죽문 호’에 그려진 매화꽃과 대나무 잎사귀는 선명하기 그지없다.


또 보물 240호인 ‘청화백자투각 모란당초문 호’처럼, 분원 백자 중 상아나 옥, 나무를 다루듯 능수능란하게 투각으로 장식된 백자를 두고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장남원 교수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릇을 만든 후 흙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기면에 문양을 새기고 뚫어야 하는데, 이 작업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아무리 정교하게 투각을 했다 하더라도 가마 안에서 불의 기운이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무도 모른다. 장 교수는 “공예에서 투각을 완성한다는 것은 고도의 조각기술과 가마기술을 전제로 한다”며 “‘흙’으로 만들었지만 이미 흙이 아니다. 흙의 재료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 경지를 확장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제 귀걸이’(신라 6세기), 동아대 석당박물관

‘금관’(가야 5~6세기), 국보 138호

‘은제도금 경가’(고려 13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섬세함의 극치, 금은동 세공품 동아대 석당박물관에 있는 금제 귀걸이는 6세기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인데 정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조지윤 책임연구원은 “누금이라는게 금실을 얇게 잘라 구슬처럼 붙이는 기법인데, 구슬 크기가 0.2~0.3mm 가량 된다”라며 “이런 금 알갱이가 수백 개 붙어있는 금제 귀걸이는 유홍준 교수님 말대로 ‘위대한 인내심’의 승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된 ‘백제 금동 대향로’(국보 287호·국립부여박물관)도 대표적인 금속공예품이다. 62.5cm에 이르는 크기와 탁월한 밀랍주조기술로 만들어져 동아시아에서 가장 뛰어난 향로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이 동국대 미술사학과 최응천 교수의 설명이다.


고려시대로 넘어오면 청동 표면에 은을 집어넣어 문양을 표현한 기법이 돋보인다. 최 교수는 “은입사는 고려에서만 볼 수 있는 기법”이라고 덧붙였다. 마침 국보 171호 ‘청동은입사 보상당초봉황문 합’의 현란한 문양은 전시장 초입을 커다랗게 장식해 관람객을 압도했다.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정은우 교수는 고려불상의 최고봉으로 일본 사가현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금동 보살 좌상’을 꼽는다. “갸름한 타원형 얼굴에 긴 신체 비례, 참빗으로 한 올 한 올 빗어 머리 위로 솟아오른 머리카락이 고려의 단아한 여인을 연상시킵니다. 어느 부분에서도 완벽성을 잃지 않은 고려시대 최고의 작품이죠. 가슴에 보이는 구슬 장신구는 손으로 떼어낼 수 있을 정도로 조각적입니다.” 여기에 조 연구원이 덧붙였다. “구슬 장신구의 경우 중국과 일본은 정확하게 좌우대칭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시다시피 가운데서 살짝 옆으로 가 있죠. 살짝 흔들린 것처럼요. 그래서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아미타팔대보살도’(고려 14세기), 사진제공 교토국립박물관

‘원각경 변상도’(고려 13~14세기), Photographⓒ[2015] Museum of Fine Arts, Boston


옷자락 한 올, 터럭 하나까지 생생하게 14세기 고려 그림인 ‘아미타팔대보살도’는 700년이 지난 지금도 화면이 생생하다. 일본 죠코지에 소장된 이 작품은 고려 불화색채감의 미학을 보여준다. 동국대 미술사학과 정우택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유일하게 모든 보살이 베일을 걸치고 있는 작품인데, 베일의 윤곽선과 주름선의 굵기가 몸의 형상과 조화를 이뤄 입체감과 투명감을 느끼게 한다. 몸체는 금니를 사용해 매우 화려한 인상을 갖게 했다. 고려불화를 그린 화가들은 효과적인 금의 사용법을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 금은 궁극적으로 그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도구였다.”


고려불화에서 사용된 문양은 국화문, 봉황문, 당초문 등 다양한데 특히 ‘당초원문(唐草圓文)’은 중국이나 일본의 어느 시기, 어느 도상의 불화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다. 고려불화에만 있는 독자적인 문양이다.


사경(寫經)은 불경을 손으로 베껴쓰는 행위다. 고려에서는 금과 은으로 사경을 하기 위해 ‘금자원(金字院)’ ‘은자원(銀字院)’같은 전담 기구까지 마련했다. 얼마나 섬세했던지 원나라에서는 사경 하는 스님 수백 명을 보내달라고 고려에 요청해왔을 정도였다. 사경의 머리 그림인 ‘변상도’는 세밀화의 극치다. 조지윤 책임연구원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림의 선이 너무 가늘어 도대체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했는데, 이태호 교수님이 실험을 해본 적이 있어요. 쥐수염 2올로 만든 서수필로 선을 그렸더니 비로소 0.1mm 정도 굵기로 그려졌다나요.”


섬세한 필력은 극사실 화풍으로 이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조인수 교수는 “터럭 하나라도 같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던 조선 시대에서는 외형만 닮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품까지 전달해야 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에 입각해 선비의 모습을 그렸다”고 전한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장진성 교수 역시 “화가 강세황은 김홍도의 화풍을 ‘완재안중(宛在眼中)’, 즉 ‘눈앞에 완연(宛然)하다’라는 말로 특징지었다. 당시 화가와 그림 감상자, 후원자, 구매자는 모두 그림속 사물의 생생한 모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고 조선 후기 사실주의 화풍을 설명했다. 매의 눈매가 서늘한 16세기 화가 이암의 ‘가응도’(보스턴미술관)나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고양이’로 불린 18세기 화가 변상벽의 ‘묘작도’(국립중앙박물관)는 선조들의 필력을 한눈에 보여준다.


높은 수준의 예술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를 최공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여건에서 장인들의 솜씨는 더욱 세련되어졌고 난이도가 높은 정밀기술도 발전을 거듭했다. 왕실 공예품 전담 기관이 장인을 관리하고 적극 후원했다. 귀한 재료를 사용해 솜씨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서 명품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장인의 기술도 소비 주체의 요구나 안목과 더불어 성장한다. 명품은 사람이 만들고 세월이 완성한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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