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1929년 뉴욕 여성들 ‘담배 행진’ … 그 뒤엔 담배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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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중유혹의 기술
오정호 지음, 메디치
288쪽, 1만5000원

1929년 미국 뉴욕 맨해튼, 부활절 퍼레이드 중 일군의 여성들이 담배를 피워물었다. 참가자 비사 헌트는 “여성들이 차별을 무너뜨리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었기를 희망한다”고 외쳤다. 남성의 상징과도 같은 담배를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피워물다니! 이 쇼킹한 사건은 주요 신문의 1면을 도배했고, ‘담배행진’은 여타 도시로 퍼져나갔다.

 역사적인 페미니즘 기획과도 같은 이날 행사가 사실은 담배회사(아메리칸 토바코 컴퍼니)의 작품이었다면 믿겨지는가. 아니 보다 정확히는 PR전문가 에드워드 버네이즈의 작품이었다. 새로운 시장으로 여성 공략에 나선 회사를 위해 ‘여성 흡연=여권 신장’이란 프레임을 만들어낸 것이다. 세계 최초로 대서양을 단독 비행한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이 회사의 광고모델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이날 행진에서 성명서를 읽은 비사 헌트도 버네이즈의 비서였다.

 책은 이처럼 상품 마케팅에서 홍보, PR, 정치 프로파간다에 이르는 다양한 ‘대중유혹기술’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히틀러의 정치 캠페인에서 포토샵 이미지 조작까지를 아울러 개론서 역할을 해낸다. 소비자·유권자의 마음을 얻는 효과적인 PR 기술이지만 때로는 현실왜곡이자 대중조작인 양면성도 놓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31일부터 방송될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우리’ 6부작 중 1, 2부에 해당한다. 다큐를 연출한 오정호PD가 45일 해외 취재와 자료조사, 인터뷰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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