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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박 대통령 앞에서 북한군이 행진하면 … 열병식 참석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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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군 의장대가 2000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향해 분열하고 있다. 당시 환영식에서는 ‘제국주의 침략자 모조리 때려부시자’는 가사가 반복되는 ‘조선인민군가’와 ‘무장 제국주의 침략자를 때려부시고…’라는 내용의 ‘유격대행진곡’이 연주됐다. [중앙포토]

“우리가 부담스러운 것은 한·중 정상이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지켜보는 모습이 전 세계에 타전되는 게 아니다. 걱정되는 건 그 열병식에 북한군이 참여할지, 중국의 어떤 무기가 등장할지 등이다.”

청와대가 20일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계획을 발표한 뒤 정부 당국자가 한 말이다. 청와대 발표에 열병식에 참석할지 여부가 제외된 것을 두고서다. 이 당국자는 “잔칫집에 가는데 정작 잔칫상을 안 받고 나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으냐. 하지만 아직 따져봐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고 했다. “열병식의 성격 등 제반사항을 검토해서 결정하겠다”는 발표 뒤에 숨겨진 고민이다. 그 고민의 뿌리에는 북한 변수도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여러 나라에 군 의장대 파견을 요청했다. 북한도 들어 있다. 북한은 아직 확답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가 북한군이 포함된 군사 퍼레이드에 참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열병식에 참여하는 병력이 완전히 파악되기 전에 우리가 참석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당초 미국을 의식해 중국 방문을 고민하고 있다는 분석과는 다른 얘기다. 외교가 소식통은 “이번 행사는 한·중이 연대해 일본을 상대로 싸운 걸 기념하는 역사적 맥락, 즉 명분이 우리에게 있다. 그 때문에 일찌감치 가는 쪽으로 추진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군이 참여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로선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방중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한다.

외교가에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대신 특사 자격으로 올 것이란 소문도 있다. 이럴 경우 ‘의전 모양새’도 정부로선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헌법상 북한의 국가 수반인 김영남과 박 대통령의 의전 서열이 형식적으론 같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의 구조를 잘 아는 중국이 국가 원수인 우리 대통령과 김영남의 의전 서열을 같게 놓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열병식에 어떤 무기와 장비가 등장할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일이 경계하는 중국의 군사적 야심을 보여주는 최신무기가 대규모로 공개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지난 6월 열병식 계획을 발표하며 “장비 사열에서 선보일 장비들은 국산 현역 주전무기들로, 대다수가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라고 밝혔다. 홍콩 펑황(鳳凰)TV는 지난 8일 중국이 개발 중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둥펑(東風·DF)-31B’가 열병식에 등장할지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둥펑-31B의 사거리는 미국 본토까지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는 중국 측에 이번 행사가 과거의 상처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화해의 장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거기에 주변국이 위협을 느낄 만한 무기들이 대거 등장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수차례 요청했지만 중국은 아직까지 열병식의 세부 계획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상들이 참여하는 행사는 사전에 분초 단위로 동선과 프로그램을 짜는 게 관례인데, 보름 앞으로 다가온 현 시점에도 구체적인 사항들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행사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클라이막스가 어디인지 등을 알아야 대통령의 동선을 정할 텐데 아직까진 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들은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 왕쥔성(王俊生) 부연구원은 지난 14일 중국망(中國網)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이 정말 군사력을 과시하려 했으면 외국 지도자들을 초청하지 않고 국내용 행사로 더 성대하게 치른 뒤 대외적으로 홍보했을 것”이라며 “이는 과한 걱정이며, 박 대통령이 열병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중국 내에서 원망하는 여론이 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유지혜 기자, 왕웨이 인턴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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