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차별 금지법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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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차별에 따른 사회적인 불만과 부작용이 심해지고 있는데도 대책 마련은 암중모색에 머물고 있다. 구조조정 등을 위해 급한 김에 나이 차별해 놓고 안되겠다 싶자 해결책을 찾고 있으나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나이 순서로 퇴직자를 고르는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일정 연령이 지나면 연봉을 낮추는 대신 퇴직 시점을 늦추는 제도다.

그러나 국내에선 검토단계에서부터 노동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민주노총은 기업들이 이미 연봉제를 통해 40대 후반부터 임금을 삭감하고 있는데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경우 임금 삭감을 공식화하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고령자의 생산성에 맞게 임금을 조정할 수 있어 조기 퇴직을 막을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본다. 이 같은 노사 간의 이견이나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임금피크제의 조기 도입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취업 연령을 제한하는 기업들의 관행도 워낙 뿌리깊어 제대로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 전재희(全在姬)의원 등 국회의원 29명은 모집.채용시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을 지난해 7월 발의했다.

기업이 스스로 못 고치니 법에 의존하자는 것이다. 全의원은 "전체 실업률의 두세배에 이르는 청년 실업을 완화하려면 이 법안이 꼭 통과돼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미국처럼 모든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연령 차별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면 연공서열적인 기업 문화와 시스템이 확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장 법률사무소 김영무(金永珷) 대표변호사는 "연공보다 능력에 기초해 평가하고 임금을 산정하는 성과 평가 시스템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LG 등 일부 대기업에선 나이 차별을 시정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나이나 직급에 관계 없이 전문성에 따라 보직을 주는 새 인사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LG전자는 2001년 9월부터 임원 이하 직급을 5단계에서 3단계로 줄였다. 그후부터 조직책임자(부장.그룹장)가 안되면 회사를 떠나는 폐단이 상당부분 없어졌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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