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실패하라” 수원 춤추게 한 서정원의 주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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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자신을 경험을 통해 권창훈(왼쪽)과 조찬호(오른쪽)의 공격 본능을 깨운 서정원 감독. [사진 수원 삼성]

감독은 성공의 전제 조건으로 ‘실패’를 이야기했다. 스승이 제시한 역발상 화두를 읽은 제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과감히 도전했다. 수준 높은 경기력과 기대 이상의 성적이 뒤따랐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후반기 수원 삼성의 상승세가 눈부시다. 수원은 지난 12일 대전과의 경기에서 후반 막판 극적인 득점포를 터뜨려 2-1 승리를 거둔데 이어 16일에는 제주를 상대로 0-2를 4-2로 뒤집어 또 한 번 ‘극장 축구’를 선보였다. 두 경기에서 승점 6점을 보탠 수원은 선두 전북(승점 53점)과의 격차를 7점으로 좁혔다. 최근 10경기 6승3무1패다.

 라커룸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전반기에 6골·5도움으로 맹활약한 주포 정대세(31)가 일본 J리그 시미즈 S펄스로 이적했다. 공격수 박종진(28)과 수비수 민상기(24)·홍철(25)은 부상자 명단에 있다. 제주전에서는 수비수 조성진(25)과 곽희주(34)가 잇따라 다쳤다. 공격과 수비 모두 큰 구멍이 났다.

 그럼에도 수원이 K리그 선두권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실패를 딛고 올라온 선수들의 활약이 있었다. 국가대표 플레이메이커 권창훈(21)이 대전·제주전에서 연속골을 터뜨렸다. 올 여름 포항에서 임대로 데려온 날개 공격수 조찬호(29)는 제주전에서 혼자 2골·2도움으로 4개의 공격포인트를 쌓았다. 두 선수의 공격 본능을 깨운 주인공은 서정원(45) 수원 감독이다.

 서 감독은 두 선수에게 ‘최선’과 ‘노력’ 대신 ‘실패’를 먼저 강조했다. 서 감독은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하라. 그 과정에서 배울 점을 찾으면 된다”며 격려했다. 공격수 출신인 자신의 경험과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다. 서 감독은 “나 또한 현역 시절 득점 찬스를 많이 놓쳤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공격수들은 때때로 무모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는다”고 말했다.

 수원 유스팀인 매탄고 출신 권창훈은 지난 시즌까지 베테랑 김두현(33·성남)에 밀려 2인자 역할에 그쳤다. 조찬호는 지난해 포항에서 경쟁자 김승대(24)와 강수일(28·제주)이 국가대표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다. 두 제자와 면담하며 가슴 속 한과 열정을 읽은 서 감독은 “실패해도 좋다. 마음껏 뛰라”며 등을 두드려줬다. 두 선수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힘차게 일어섰다.

 권창훈은 “감독님을 믿고 매 경기 도전하며 배운다”면서 “하루 빨리 성장해 감독님의 어깨를 가볍게 해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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