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윤기씨의 딸 다희씨 이색 결혼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번역문학가 겸 소설가이자 신화(神話)전문가로도 유명한 이윤기(李潤基.56.사진(左))씨가 '인문학 동반자'인 딸의 결혼식을 독특하게 치러 화제다.

李씨의 딸 다희(多喜.23)씨는 12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학원 원장(33)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하객은 고작 1백여명 정도. 30년 가까이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李씨가 난생 처음 혼주(婚主)로 나선 자리치고는 썰렁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다희씨의 결혼식이 이처럼 조촐하게 치러진 것은 "틀에 박힌 결혼식은 싫다. 단출하지만 의미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그의 고집을 양가 부모들까지 모두 선선히 받아들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운데 李씨는 '이윤기의 딸 다희'라고 인쇄된 청첩장을 보고 "너희들이 주인공인 결혼식에 왜 내 이름이 앞서느냐"며 호통을 칠 정도로 딸의 뜻을 앞장서 지켜줬다.

이처럼 아버지의 '특별한 축복'을 받은 다희씨는 그래서 이날 주례를 두는 대신 임길진 미국 미시간대 석좌교수 등 어려서부터 자신을 지켜봐온 어른들에게 덕담을 부탁했다. 결혼식 막바지에는 신랑과 함께 바이올린과 첼로로 직접 연주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다희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작, 자신의 의지에 따라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중퇴'를 반복하면서 인문학을 익혀온 재원으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현재는 일시 귀국해 있는 상태.

최근에는 호메로스에서 출발, 소프클레스.오비디우스 등 그리스.로마 시대의 작품들을 두루 거쳐 17세기 셰익스피어에 이르기까지 고전들을 모두 우리 말로 번역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아버지와 함께 진행할 것이란 사실이 알려져 이목을 끌기도 했었다.

李씨는 평소 다희씨와의 대담 내용을 책으로 펴낼 정도로 딸의 재능을 아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딸의 의미있는 고집을 지켜주기 위해 욕먹을 각오를 하고 문단에도 결혼식을 알리지 않았다. 나중에 서운해 할 지인들도 많을 것"이라며 "자식의 결혼식을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기회로 착각하는 사회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