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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강한 달러 앞에, 줄줄이 약한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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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과 중국이 환율로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강한 달러’와 ‘약한 위안화’가 좋지 않은 방향의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신흥국 통화를 밀어내고 주저앉히는 형국이다. 신흥국 통화 가치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낮아지면서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까지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최근 원화가치는 연일 하락하고 있다. 17일 달러에 대한 원화값은 1183.1원으로 전날보다 9.1원(0.78%)이나 떨어졌다(환율 상승). 달러에 대한 원화값은 4월29일 1068.6원을 기록한 뒤 계속 약세다. 7월 이후에는 하락폭이 더욱 가팔라져 7월1일부터 이날까지 5.8%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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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신흥국 통화도 마찬가지다. 말레이시아 링깃은 외환위기 이후 가치가 가장 낮아졌다. 15일 현재 달러에 대한 링깃 가치는 달러당 4.0690링깃으로 아시아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월9일(달러당 4.7125링깃)이후 최저치다. 7월 이후 하락폭만 7% 이상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이 정도까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인도네시아 루피아도 외환위기 때인 1998년6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브라질 헤알은 올 들어서만 달러 대비 가치가 33%나 떨어졌다. 올해 1월1일 0.2657헤알이던 달러 대비 헤알 값은 지난 6일 0.3540헤알까지 추락했다. 헤알 가치 역시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낮은 수준이다. 남아공화국 랜드 가치도 2001년12월이후 최저 수준이고, 터키의 뉴리라 가치는 2005년 화폐 개혁 이후 가장 낮아졌다. 미국 내 경제지표 호조와 임박한 금리 인상, 세계 경제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현상, 경기 침체로 인한 원자재값 급락 등이 모두 달러의 콧대를 높인 요인이다.

 달러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면서 신흥국 통화를 주저앉히고 있다면, 반대로 위안화는 다른 통화를 끌어안은 채 함께 추락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은 11일 전격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1.86% 낮추는 등 사흘 동안 4.66% 평가절하했다. 이 때문에 11~13일 원화 가치가 하루 1% 안팎으로 급등락하는 등 세계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는 14일 0.05%, 17일 0.009% 반등하면서 가치 하락을 멈췄지만 추가 하락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게 시장 전문가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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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요섭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이번 평가절하는 중국이 은행간 시장 환율 종가와 외환시장 수급, 즉 시장 메커니즘을 반영해 단행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달러 강세가 추가로 진행되면 이번에도 시장상황을 반영해 위안화 추가 절하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나대투증권은 연말까지 5~6%의 추가 절하 가능성을 제기했다. 17일 6.3969위안인 달러당 위안화 가치가 6.5~6.6위안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미국·중국의 통화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재채기를 하자 신흥국 경제는 심한 독감에 걸렸다. 특히 원자재 수출국의 상황이 좋지 않다. 강한 달러와 중국의 수요 감소 등으로 인해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통화 약세를 부채질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외국인 투자자가 대거 빠져나가고 있다. 올 한 해 말레이시아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투자자금은 30억 달러(3조5000억여원)로 금융위기 시점인 2008년 이후 최고치다. 지난달 외환보유액도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000억 달러(118조3000억원) 미만으로 추락했다. 대표 주가지수인 KLCI지수는 지난 14일 1596.82로, 2012년5월 이후 3년여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주 채권금리도 0.2% 급등했다. 국채에 대한 부도지표인 CDS프리미엄은 2011년 이후 최고인 167까지 상승했다. 인도네시아·브라질 등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신흥국 통화 가치는 앞으로도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의 진단이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위안화 절하는 수출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단행된 측면도 있는 만큼, 주변국도 중국에 대한 수출가격 경쟁력 유지를 위해 자국 통화 가치 하락에 경쟁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신흥국 시장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이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9월 중으로 신흥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9월 위기설’이 조심스레 제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도 태풍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미 한국은 통화 가치 하락이나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 상승 등 측면에서 아시아 선두권이다. 6,7월 외국인 투자자가 3조929억원의 순매도를 기록하는 등 외국인 매도세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달러에 대한 원화값의 1200원 돌파는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하나대투증권은 “1200원을 중심으로 비교적 높은 구간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계 투자은행(IB)인 모건스탠리는 한국을 러시아·브라질·남아공·대만·태국·싱가포르·칠레·콜롬비아·페루와 함께 ‘위안화 평가절하 때문에 불안해진 10개국’에 포함시켰다. 국제금융센터는 ‘말레이시아 금융불안 심화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현지 금융불안이 심화하면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한국은 기초 경제 여건과 외환 건전성이 매우 양호하기 때문에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가 이뤄져 외국인 자금 유출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면 일부 취약 신흥국의 금융 불안이 현실화해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진석·이승호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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