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요리방] 앙실이 김밥 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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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실이 부부. 지난해 10월 결혼한 맞벌이 신혼부부 조요환(32).윤소영(31)씨. 일을 핑계로 밥 해먹는 일이 거의 없는 요즘 부부다. 평일엔 각자 사먹거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때우고, 주말엔 식당도 이용하고 시댁.친정에서 얻어먹기도 하며 버텨 왔다. 이들이 최근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자"고 작심했다. 살짝 엿보기로 하자.

퇴근길에 6개월 먼저 결혼한 후배를 만났다. 그녀는 오늘 저녁에 김밥을 싼단다.

'헉-, 요즘 세상에 김밥을 싼다니….'

"김밥 한 줄에 1천원짜리도 있잖아?" 하며 말리는 나에게 그래도 김밥은 집에서 싸는 게 맛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황당하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와 먼저 퇴근한 꼼꼼이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결혼한 지 8개월이 되도록 '마누라표 밥' 한끼도 제대로 못 얻어먹었으니…. 꺼칠해 보이기까지 했다.

"김밥 좋아해?"

"있으면 먹지."

"아니, 좋아하냐고???"

"좋아하면 해줄라고? 그것도 아니면서 왜 물어?"

'머시라고라???'

자존심이 팍 망가졌다.

'김 깔고 밥 놓고 둘둘 말면 김밥인데….치칫. 그것도 못할까봐?'

당장 수퍼마켓으로 향했다.

'김밥에 필요한 게 뭐지?'

친정엄마가 말아주던 김밥의 속재료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눈에 띄는 것을 쇼핑백에 담았다.

단무지, 오이, 햄, 어묵, 계란, 그리고 김.

'아참, 김발도 없지.'

이런 저런 재료를 골라 담고 계산대에 서니 1만2천원이란다.

'김밥을 사면 1천원짜리 12줄 값인데….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둘이서 배 터지게 먹고도 남을 양인데. 이게 뭐하는 짓이람?'

자존심 때문에 일단 재료는 사갖고 왔는데 이제부터가 문제다. 먹어만 봤지 한번도 말아본 적이 없는 김밥. 먼저 꼼꼼이의 눈길을 피해 주방 후미진 곳에 자리잡고 심호흡을 했다.

"작전 개시." 혼잣말로 힘찬 명령을 내리고 김밥 말기 작업 착수.

밥통에 있는 밥을 큰 그릇에 퍼담고 참기름과 소금을 약간 뿌려 간이 배게 했다. 오이.단무지.어묵.햄은 김 길이로 길게 썰었다. 다음은 계란말이. 계란 두개를 풀어서 프라이팬에 쏟아부었다. 앗… 뒤집다가 완전 빈대떡이 됐다(--). 혼자서 꾸역꾸역 먹어치우고 두번째 도전에서 아슬아슬하게 성공.

이제부터는 김밥 말기.

'앗, 그런데 이게 뭐야???'

김을 뒤집어 쌌더니 수세미 표면같이 거친 김밥이 만들어진 것. 그래도 다행인 건 김의 품질이 좋아선지 김밥 옆구리가 터지는 참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꼼꼼이 몰래 한 입 베어 먹어봤다. '오예, 앙실이도 제법인 걸(<<).'

탁월한 요리 재능까지 겸비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곤 속으로 자화자찬. 그리곤 자신있게 김밥을 말았다. 마침내 가지런히 썬 김밥 첫 작품을 꼼꼼이 앞에 내밀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꼼꼼이. 김밥 하나를 입에 넣더니 와락 달려들어 김밥 문 입으로 내 입술을 훔쳤다(*<<*).

참, 다음날 꼼꼼이가 출근하면서 귀에다 살짝 이렇게 속삭였다. "오이는 설탕과 식초를 섞은 물에 10분 정도 담갔다가 씁니다. 어묵이나 햄은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서 넣어야 더 맛있답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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