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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화를 찾는 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0호 27면

제법 오래 전에 작성된 오스트리아에 관한 보고서가 있다. 보고서는 수도인 비엔나 인구는 100년 전에 200만 명에서 170만 명으로 줄었는데 도시의 건물은 그때보다 10배 이상 늘었다며 그 원인을 분석했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며 보고서를 읽었는데, 이젠 그런 현상이 남의 일만이 아닌 것이 됐다. 자세히 조사하고 분석하면 우리가 훨씬 더 하다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서울에 최초의 아파트가 들어섰을 때, 우리도 아파트를 갖게 됐다며 기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1974년 대학 초년생으로 와서 본 서울의 모습은 감개무량의 대상이었다. 인구 450만 명 정도였던 당시 서울엔 높은 건물과 아파트가 제법 있었고 계속 건축 중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기쁨을 자아내고, 우리도 이제 잘살게 될 것이란 희망을 갖게 했다. 모두 열심히 일했고 이런 속도라면 조만간 모두가 자기 소유의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달동네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난관들도 발전의 과정에서 참고 견뎌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기조차 했다.
아파트와 높은 빌딩이 계속 지어졌고 오늘날 서울 시내에서 빈 땅을 찾기는 힘들 정도가 되었다. 서울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백사장과 주변 건물들이 어우러져 아름답던 해운대는 어떻게 변해 있는가. 대구 앞산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보면 건물과 아파트가 시야를 가려 가슴이 갑갑해진다. 무등산에 올라 광주 시내를 내려다보아도 별 다르지 않다. 고층빌딩이 우후죽순 늘어난 도시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전국에 가득 찬 온갖 건물과 아파트가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을 유지·관리하는 데 드는 전기·수도·냉난방·하수도 등의 비용은 엄청나고, 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닌 관계의 복잡함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전국에 이다지도 많은 건물과 아파트가 들어 서 있는 데도 집이 없어서, 집세가 너무 비싸서, 서러움을 달래야 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늘어난 것 같다.
지금까지는 늘어나는 수요의 문제를 더 많은 집을 지어 공급하는 방식으로 풀어가려 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는 문제를 감당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무리 노력해도 커져만 가는 욕망을 충족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생각을 바꿔야 할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물건과 살고 싶은 우리의 욕망을 다스리지 않고는 문제가 커지기만 할 뿐이다. 이 소중한 삶의 시간을 핵심 요소에 투자하지 못하고 덜 중요하고 비본질적인 것에 바치고 말게 될 것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소비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소비사회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궁핍은 극복의 대상이지만 지나친 소유와 과소비가 추구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 중 깨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깨끗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자세로 살아가야 마음의 평화와 미래가 있을 것이다.

삶과 믿음



전헌호 서울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대학에서 석·박사 학위(신학)를 받았다. 현재 인간과 영성연구소 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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