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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 리포트] 세상에 물었다, 왜 통조림 캔은 예술이 될 수 없느냐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전시장 입구에는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캔’ 간판 모형이 있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캠벨 수프 캔’이 되어 본 이도겸(왼쪽)·양지윤 학생기자.

"이게 무슨 작품이야.” "이런 건 나도 그리겠다.” 현대미술을 두고 많은 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거나 난해하다고 말합니다. 또 예술적 가치가 없다며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죠. 그럼에도 매우 비싼 값에 사고 팔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도 많습니다. 바로 앤디 워홀의 작품이 그렇습니다. 상반된 평가로 항상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20세기 현대미술의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 앤디 워홀. 그의 작품과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열렸습니다. 그의 생일이기도 했던 지난 6일, 소중기자단이 앤디 워홀 라이브전을 다녀왔습니다.

앤디 워홀은 192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의 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피츠버그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뒤, 패션 잡지사에서 일하며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했습니다. 또 신문 광고 이미지를 잘 만들어 인정을 받기도 했죠. 1964년, 그는 본격적으로 상업미술에 뛰어듭니다. ‘팩토리’라 불린 작업실을 열어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예술작품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죠. ‘팩토리’는 곧 60년대 미국 뉴욕의 문화를 대표하는 명소가 됐습니다. 앤디 워홀은 당대 생활상을 반영한 작품을 통해 현대인의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또 엘리트 예술과 대중문화의 거리를 좁혀 대중이 예술을 쉽게 즐기도록 익숙한 소재를 활용했죠.

'인기·아름다움·죽음' 세 가지 주제에 집중

앤디 워홀 라이브전에서 조유정 도슨트에게 설명을 듣고 있는 학생기자단.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앤디 워홀은 20세기 현대미술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중기자단을 맞이한 조유정(24) 도슨트는 ‘마릴린’ 연작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앤디 워홀은 세 가지 주제에 집중했어요. 유명인, 아름다움, 그리고 죽음입니다. ‘마릴린’은 이 세 가지 주제를 가장 잘 담아낸 작품입니다.” 1962년, 당대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유명 배우였던 마릴린 먼로가 사망했습니다. 앤디 워홀은 곧장 먼로의 사진을 샀고, 첫 실크스크린 작품인 ‘마릴린’ 연작을 만들었습니다. 총 10점인 ‘마릴린’ 연작은 강렬한 색상의 부조화가 특징입니다. 누구나 한번쯤 봤을 만큼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죠. 이처럼 그는 시사에 민감했고 이를 작품에 효과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마릴린 연작이 영화배우 초상화 중 대표작이라면, ‘마오’ 연작은 대표적인 정치인 초상화 중 하나입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 앤디 워홀은 곧바로 마오쩌둥의 사진을 구해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나 중국인의 우상과도 같은 마오쩌둥을 활용한 이 작품은 2013년 당시 중국에서 전시가 금지됐습니다. 중국 지도자의 위신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앤디 워홀은 이 밖에도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축구황제 펠레,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시 각 분야 유명인들의 초상화 연작을 제작했습니다.

상품과 예술품의 경계를 무너뜨린 비누 상자

아트샵에 진열된 ‘캠벨 수프 캔’ 연작 기념품.

전시장 한복판에 자리한 브릴로 비누 박스와 헤인츠 케첩 박스 앞에 소중기자단이 서자 조 도슨트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앤디 워홀은 마트에 흔한 케첩 상자와 비누 상자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적인 물건은 예술품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을 깨트린 작품이지요. 당시 수백 개의 브릴로와 헤인츠 박스가 전시장을 가득 메웠고 이를 두고 큰 논란이 일었다고 합니다.” 또 이 작품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원래 캐나다에선 예술 작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아요. 그런데 이 작품이 캐나다로 보내졌을 때, 예술품이 아니라 잡화 상자로 취급당해 관세가 매겨졌던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죠.”

이 작품의 의미를 묻는 양지윤 학생기자의 질문에 도슨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앤디 워홀은 예술 작품이 항상 캔버스 위에 존재해야 한다는 편견을 깼습니다. 또한 작가가 직접 작품을 완성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버렸죠. 이 작품에서 그의 손이 닿은 부분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브릴로 박스는 그저 비누를 담는 상자였습니다. 앤디 워홀은 그 상자에 작품이라고 이름만 붙였을 뿐이죠. 작품을 직접 그리고 만드는 게 그에겐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예술 작품이란 작가의 의도를 담기 위한 상징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앤디 워홀은 수프 캔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 들였습니다. 캠벨 수프는 미국에서 한 해 100억 개 이상 팔리는 인기 상품입니다. ‘캠벨 수프 캔’은 수십 가지 종류가 있죠. 당시 앤디 워홀은 수프 캔을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개 전시했다고 합니다. 관람객들은 마치 마트에서 가지런히 진열된 수프 캔을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겠죠. 이 작품을 통해 앤디 워홀은 ‘왜 통조림 캔은 예술이 될 수 없어?’라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또 대중에게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이 쉽고 가까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잡동사니로 채운 타임캡슐

전시장을 따라 앤디 워홀의 작품 40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앤디 워홀은 또 색다른 도전을 합니다. 1974년, 그는 스튜디오 직원의 권유로 작업실에 쌓여있던 편지·신문·사진과 같은 잡동사니들을 총 612개의 컨테이너에 담았습니다. 소포 상자, 캐비닛에 나누어 담은 이 물건들은 ‘타임캡슐’이란 작품이 됐죠. 지금에서야 이 물건들이 당대 문화·예술계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긴 했지만 당시엔 결코 비싸거나 값진 물건은 아니었을 겁니다. 앤디 워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여긴 일상적인 물건들을 모아두고 이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각각의 타임캡슐에는 약 600여 개의 물건이 들어있습니다. 현재 3명이 팀을 이뤄 물건들을 분류 중인데 마무리 짓기까지 무려 6년 이상 걸릴 거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앤디 워홀의 거대한 ‘타임캡슐’인 셈이지요.

이번 전시에는 ‘카모플라주 자화상’ ‘해골'을 비롯해 워홀이 제작한 영화·책 등 대표작 400여 점이 공개됐습니다. 또한 1985년 앤디워홀이 제작한 ‘비너스의 탄생’ 등 미디어 아트 10여 점도 한국에서 최초 공개됐습니다. 또한 소비사회 미국이 품고 있던 돈에 대한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한 ‘달러 사인’ 등 앤디 워홀의 다양한 시각이 담긴 작품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취재에 나선 양지윤 학생기자는 “전시회를 통해 ‘왜 앤디 워홀이 항상 새로운 작품을 추구했는가’라는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그가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갖고 사고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습니다. 이도겸 학생기자는 “앤디 워홀이 예술의 가면을 벗고 대중에게 한 걸음 다가섰기에, 그 솔직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데 한몫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트몬 기획팀 나원주 주임 인터뷰

자신을 브랜드로 만든 창의력 곳곳에서 볼 수 있죠

앤디 워홀 라이브엔 미국 피츠버그 앤디워홀미술관 소장품이 대거 공개됐죠. 국내 최초로 선보인 작품뿐 아니라 앤디 워홀의 삶의 흔적을 망라했습니다. 소중기자단이 전시를 주관한 아트몬의 기획팀 나원주(27) 주임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글=양지윤(서울 도성초 4)·이도겸(서울 공진중 2) 학생기자

―앤디 워홀 라이브에서 '라이브'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번 전시는 앤디 워홀이란 아티스트 자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따라서 회화와 영화, 인터뷰 매거진, 책, TV프로그램, 음반 커버디자인 등 그의 혁신적인 작품들을 살펴보고 동시에 그의 삶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라이브’란 이름을 붙였죠.”

―출품작 중 앤디 워홀의 대표작은 뭔가요.

“우선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마릴린 먼로, 무하마드 알리, 마이클 잭슨 초상화와 함께 캠벨 수프, 광고 연작, 브릴로 박스 그리고 죽음에 관한 작품인 해골, 그의 일생의 기록물인 타임캡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 디지털 작품 10점도 의미가 있어요. 유튜브에 떠돌아 다니던 미디어 아트 작품의 내용을 궁금해 하던 미디어 아티스트 코리 아르크엔젤이 앤디워홀미술관과 접촉해 디스크를 찾아냈고, 그것을 카네기멜론 대학 컴퓨터 클럽에서 복원해냈습니다.”

―앤디 워홀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 현대 소비사회에서 가장 콜라보레이션과 오마주가 많은 작가가 앤디 워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장 유명한 것, 가장 인기 있는 것, 주위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아주 예쁘고 매력적이게 작업했으니까요. 누구나 알 만한 마릴린 먼로부터 코카콜라까지 인상적인 작품이 많습니다. 그의 작품은 현대 사회를 비추는 시대의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각광받는 것이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마릴린 먼로입니다. 마릴린 먼로는 전설적인 존재였고, 가장 고독한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앤디 워홀이 제작한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는 수천 점이 팔렸고, 나아가 수백만 점으로 판매량이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첫 팝아트 작품에 켐벨 수프 캔을 쓴 이유가 있다면.

“앤디 워홀이 캠벨 수프를 처음 그렸던 이유는, 점심으로 항상 캠벨 수프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웃음).”

―이 전시회를 본 청소년들이 어떤 것을 느끼길 바라나요.

“앤디 워홀은 작가면서 영화감독,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저자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장르에 몰두하며 앤디 워홀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어 버린 거죠. 청소년들이 이 전시를 통해 예술을 좀 더 넓은 스펙트럼의 눈으로 감상하고, 그처럼 누군가에게 폭발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을 브랜딩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글=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동행취재=양지윤(서울 도성초 4)·이도겸(서울 공진중 2) 학생기자,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DDP 제공

앤디 워홀 라이브

장소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DDP) | 기간 9월 27일까지

입장료 성인(만 19~64세) 1만5000원, 청소년(만 13~18세) 1만2000원, 어린이(만 7~12세) 8000원

시간 오전 10시~오후 9시(입장 마감 오후 8시, 월요일 휴관) | 문의 02-523-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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