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그와 나는 포로였다, 같은 인간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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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일본군 육군 이등병 오구마 겐지의 1945년 만주 복무 시절 모습(큰 사진). 겐지와 함께 일본 정부에 소련 억류자에 대한 피해보상소송을 낸 오웅근씨(작은 사진). [사진 동아시아]

일본 양심의 탄생
오구마 에이지 지음
김범수 옮김, 동아시아
358쪽, 1만6000원

‘뻔한 얘기겠군’이란 선입견을 줄 만한 제목 때문에 이 책을 밀쳐버릴 분들을 위해 일본판 원제를 먼저 알려드린다. ‘살아서 돌아온 남자-어느 일본군의 전쟁과 전후’다. ‘광복 70주년 맞춤 기획이겠지’ 짐작할 이들에겐 다음 구절을 권한다. 한국인이고 일본인이고 간에 우리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저절로 일깨워주는 서술 중 하나다.

 “서로 전쟁을 체험한 사람이어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운다든지 아우성친다든지 감정이 격해진다든지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서로 알았다. 격하게 감동한다든지 운다든지 하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296쪽)

 주인공 오구마 겐지(90·小熊謙二)는 19살에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한 3년을 돌아보면서도 ‘비참한 운명’ 운운하는 다른 회상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살아남는 데 필사적이었다. 그런 추상적인 것을 생각한 것은 원래 수준 높은 사람이거나 실외에서 중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장교였을 것이다.”

저자 오구마 에이지

 이 독특한 생활사(生活史)를 쓴 이는 겐지의 아들인 오구마 에이지(53·小熊英二) 게이오기주쿠대 종합정책학부 교수다. 1925년 태어나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살다가 징병되어 중국 대륙으로 보내진 뒤 수용소에서 귀환해 밑바닥 삶을 거친 아버지의 일생을 아들은 ‘담담하게’ 풀어낸다. 언뜻 전쟁 체험기처럼 보이지만 전쟁 전과 후의 일본 사회사와 경제사가 한 가족사를 통해 시시콜콜 펼쳐져 ‘살아낸 20세기 역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도시 하층의 상인 집안, 전후 뜨내기 인생을 다루는 관점 덕에 민중사 구실도 겸하고 있다. 솔직한 증언과 꼼꼼한 채록으로 소설 못지않은 흥미를 돋우는 구성도 좋다. 에이지는 “글을 남기지 않는 사람, 그러나 후세에 전해야만 하는 경험을 한 사람의 기억을 글로 써둔다는 것은 역사 연구자의 역할”이라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부친이 특별한 인간도 아니고 성인(聖人)이 아니라는 것도 아는 아들은 단 하나, “아버지가 갖고 있는 타자(他者)에 대한 상상력”(7쪽)에 감명 받았고, 이런 상상력이야말로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이라는 뜻에서 책을 지었다고 털어놨다. 그 구체적 사건이 한국인과 연결돼 있는 제9장 ‘전후보상재판’에 상세히 펼쳐진다. 겐지는 1970년대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를 읽고, 81년 폴란드 민주화운동에 공감한 뒤부터 몇몇 사회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던 89년 ‘부전(不戰) 병사의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이 단체의 회보 『부전』에 ‘조선인 일본군’이었던 오웅근씨가 ‘맨주먹의 병사’라는 수기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내용을 보니 수용소에서 알던 한국인이었다. 중국에 거주한다는 오씨와 연락이 닿은 겐지는 소련 억류자에 대해 일본 정부가 주는 ‘평화기념사업’ 위로금 10만 엔을 신청해 절반인 5만 엔을 보낸다. 강제로 일본군에 징집됐지만 전후 국적을 상실해 연금이나 기타 대상에서 제외됐던 오씨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하자는 행동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오웅근씨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정식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겐지에게 공동 원고가 되어달라고 요청한다. 96년 9월 도쿄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면서 겐지는 귀찮아질지 모른다는 이웃 말에 “무엇에 신경 쓰라는 건가. 어차피 ‘아래의 아래’에서 살아온 몸”이라고 응수한다. “‘일본계 일본인 전 포로’와 ‘조선계 중국인 전 포로’가 보수파 아시아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아 재판을 제기한다는, 거의 전례가 없는 소송이었다.”(337쪽)

 재판에선 졌다. 20분에 걸쳐 ‘인간의 권리를 지키게 해 달라’고 구두변론까지 한 겐지는 2002년 대법원에서 청구 기각으로 결심이 나오자 “법원 서류 더미 속에 남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돌아섰다. 겐지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 화나는 것이 많다며 아들에게 말한다.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복하는 것이나 난징 사건이 거짓이라고 쓴 논조에 대해서는 벌써 포기한 심정이다. 그러나 ‘조용한 분노’는 언제나 있다. 최근 주간지의 제목을 보고 있으면 배타적인 모독성 발언이 넘쳐나고 역사의 진실을 축소시키고 있다.”(348쪽)

 겐지는 요즘 90세 고령에도 능숙하게 집안일을 하며 ‘국경 없는 의사회’에 회비를 내고 양심수 수감에 항의하는 영문 엽서를 써서 보낸다. 아들은 마지막으로 시베리아나 결핵요양소 등에서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을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희망이다. 그것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S BOX] 『소녀의 눈물』 여고생이 직접 듣고 쓴 위안부 할머니

일제강점기, 꽃다운 어린 나이에 강제로 전장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은 광복 70주년이 되도록 가시지 않고 있다. 『소녀의 눈물』(박정연 지음, 버튼북스, 64쪽, 1만원)은 그 아픔을 또 다른 10대 소녀의 눈으로 그려낸 동화책이다. 저자는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여고생이다. 방학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의 말벗이 됐다. 이곳에서 할머니들에게 들은 얘기를 바탕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이 동화책을 펴냈다.

 동화의 주인공은 저자보다도 더 어린 소녀다. 동네에서 또래들과 나물 캐다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에 끌려간다. 전쟁이 끝나고 어렵사리 고향에 돌아오지만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찾을 길 없고, 이웃들은 소녀가 겪은 몹쓸 일을 외면한다. 말 못할 아픔을 품은 채 어느새 할머니가 된 주인공. TV에서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보고 그와 같은 자신의 힘든 과거를 세상에 털어놓을 용기를 낸다. 이 용감한 할머니들의 소원은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다. 저자는 이 동화책을 영문으로도 펴냈다. 우리말 동화책의 판매 수익이 생기면 이를 영문본 보급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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