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선 출생 기적의 ‘김치’ … “비극 알아야 평화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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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2월 흥남부두에서 떠난 피란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5 이경필씨(왼쪽)와 김치1 손양영씨. 1090 봉사단원인 두 사람은 광복 70년·분단 70년을 맞아 임진각을 찾았다. [조문규 기자]
‘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 [조문규 기자]

8·15 광복 70주년이다. 한반도 분단 70주년이다. 분단과 전쟁 속에 경이롭고 극적인 사연이 있다. 1950년 11월 중공군(중국군)이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미군과 한국군은 장진호에서 후퇴했다. 북한 동해안의 흥남부두에 피란민이 몰렸다. 12월 강추위 속 흥남 철수작전이 펼쳐졌다.

 12월 23일 흥남을 떠난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에 만삭의 여인 다섯이 탔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가 탔던 배다. 경남 거제도 장승포항까지 2박3일의 항해가 이어졌다. 그 기간에 다섯 명의 새 생명이 태어났다. 미국 선원들은 출생 순서대로 김치(Kimchi) 1~5라는 별명을 지었다. 그 다섯 중 김치1과 김치5 둘은 11일 임진각(경기도 파주시)을 찾았다. 김치5는 이경필(장승포가축병원장), 김치1은 손양영(경동글로벌 리소시스 대표)씨다(김치 2·3·4는 소재 파악 안 됨).

 그들의 첫 대화는 태생의 비밀이다. 메러디스 빅토리는 민간 화물선(7600t), 승선 정원은 50명. 하지만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당시36세) 선장은 화물을 버리고 피란민을 태웠다. 화물칸은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최종 승선인원 1만4000명.

 김치1(손양영)=“그 배가 마지막 피란선이었다. 배 안은 배고픔과 공포로 가득했다고 한다. 나는 선장실 옆 의무실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나는 최연소 피란민이 됐다.”

 김치5(이경필)=“나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여명 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60대 피란민이 앞니로 탯줄을 끊어줬다고 한다. 나의 출생으로 피란민은 1만4005명이 됐다.”

 둘은 망배단에 잠시 섰다. 목함지뢰사건 때문인지 감회는 더욱 깊은듯하다.

 김치5=“아버지는 함흥의 3대 독자였다. 아버지는 사진관을 운영하셨다. 아버지는 카메라를 짊어진 채 어머니, 형과 함께 배에 올랐다.”

 김치1=“부모님 고향은 북청이다. 살아계셨을 때 어머니는 늘 울며 지내셨다. 북한에 두고 온 저의 형(당시 9세)과 누나(5세)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남쪽으로 며칠만 피란 가면 다시 고향에 올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두 자식을 삼촌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씨는 경상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ROTC로 군복무를 했다. 그는 장승포에 가축병원을 차렸다. 손 씨 가족은 서울로 이주했고, 그는 연세대를 나와 무역회사를 다녔다. 철강 제품을 수출하는 회사다

 기적의 김치들 나이는 65세. 김치1이 하루 차이 형이다. 그들 삶의 역정은 한국 현대사다. 김치1은 “미국 지사 근무 등 수출전선에서 뛰어다녔다. 우리 세대는 국제시장 덕수의 삶 그대로”라고 했다. 김치1은 현역이다. 김치5도 여전히 가축병원 원장이다. 그는 주민들의 가축을 돌봐주고 주사를 놓는다. 이씨는 “생전에 아버지가 ‘숟가락 하나 없는 피란민을 받아준 거제도 분들에게 평생 감사하면서 살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섬을 떠나지 않았다. 장승포 앞바다가 고향인 나도 그렇다”고 했다. 이·손씨는 “우리들의 탄생은 작은 기적이지만 광복 후 대한민국 70년은 거대한 기적”이라고 했다. 둘의 시선이 녹슨 증기기관차 너머 DMZ로 옮겨간다.

 김치5=“아버지는 거제도에서 사진관을 여셨다. 어머니는 상점을 차렸다. 아버지는 평화사진관, 평화상점이라고 간판을 달았다. 젊었을 땐 그 의미를 실감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시는 전쟁 없이 살라는 뜻으로 평화라는 단어를 고집하셨다.”

 김치1=“광복 후 경제 번영과 민주화를 일궈냈다. 그 성취는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래의 통일도 마찬가지다.”

 ‘1090 평화와 통일운동’ 봉사단원인 두 사람은 결의한다. “전쟁의 비극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있다. 광복 70년을 맞아 우리가 1090운동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

글=김춘식 기자, 안정호 1090 평화와 통일운동 연구원 kim.choonsik@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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