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막말 논란 덕봤나 ‘메이저 후보’된 피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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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도널드 트럼프의 막말 행진이 주목을 끌고 있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레이스에서 칼리 피오리나 휴렛팩커드(HP) 전 최고경영자(61·사진)가 화제의 인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 6일 첫 TV토론이 끝난 뒤 피오리나는 지지율 순위가 14위에서 4위로 수직상승했다. NBC뉴스가 토론 직후인 7~8일 실시해 9일 공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피오리나는 트럼프(23%),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13%), 벤 카슨 전 신경외과 의사(11%)에 이어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과 더불어 공동 4위(8%)를 기록했다. 선두권을 형성하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각 7%)까지 제친 것이다.

 피오리나는 지난 4일까지만 해도 지지율이 1~2% 내외에 그쳐 상위 10명만으로 치러지는 ‘메이저리거’ 토론에 끼지 못했다.

 하지만 ‘마이너리거’ 7명이 치르는 토론에 참여한 그녀는 다른 후보를 압도하는 자신감과 요점을 낚아채는 말솜씨로 두각을 보였다. 이번 NBC 조사에선 “1·2부 토론에 참여한 17명을 통틀어 누가 승자였다고 생각하나”는 질문에 가장 많은 22%가 피오리나를 꼽았다.

 당시 TV토론에서 피오리나는 “난 일개 비서로 시작해 전세계 150개국에서 900억달러(약 105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가장 큰 정보기술회사의 최고경영자까지 올랐다”며 “난 여기 있는 어떤 다른 후보들보다 세계의 지도자들을 잘 안다. 단 예외는 힐러리 클린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지율 1위를 달리는 트럼프를 직접 겨냥, “트럼프는 사면·헬스케어·임신중절 등에 관한 입장이 바뀌어왔다. 묻고 싶다. 국가를 다스릴 때는 어떤 걸 택할 것인지” “난 (트럼프처럼) 출마 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유는 그의 부인 재단에 돈을 내지 않았고 부인의 뉴욕주 상원의원 출마시 기부금을 주지 않아서 그렇다”고 몰아세우기도 했다.

 또 “현재(대선전 초기)를 기준으로 보면 지미 카터나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도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신이 HP로부터 해고당한 이유에 대해선 “기존 현상에 도전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이는 지도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피오리나의 인기 상승은 TV토론 직후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의 반사이익을 봤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토론 다음날인 7일 트럼프가 TV토론 진행자였던 폭스뉴스의 여성앵커 메긴 켈리에 대해 “그녀의 눈에 피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다른 어딘가에도 피가 나왔을 것”이란 막말을 하자 피오리나는 재빠르게 “트럼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나는 켈리 편”이라고 비판해 여론을 탔다. 켈리와 폭스뉴스가 별다른 공식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화당의 유일한 여성 후보인 피오리나가 ‘트럼프 대 피오리나’의 대립구도를 교묘히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피오리나는 9일에도 CNN등에 출연, “여성이면 트럼프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다 안다. 모욕적”이라며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자 참다못한 트럼프는 즉각 트위터를 통해 “피오리나와 10분 이상 직접 대화하면 두통이 올 것이다. 그녀는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비난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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