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공포에 … IT 인재도 김밥집 차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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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나노전자물리학을 전공했던 박태호(33)씨는 1년여간의 준비 끝에 지난 3월 프리미엄 김밥 브랜드인 ‘바르다 김선생’ 지점을 열었다. 엄격한 대기업에선 바라기 힘든 도전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하지만 전공과 달리 그는 김밥으로 창업했다. 그는 2011년 말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해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서 일해 왔던 엔지니어 출신이다. “IT(정보기술) 창업에서 웬만한 아이템은 이미 다 있더라고요. 무작정 IT로 달려들었다 망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실패가 용납되는 사회도 아니잖아요. 돈을 벌어야 할 상황에서 뛰어들 만한 아이템은 많지 않았어요.”

 박근혜 정부 3년 차. 정부는 출범 초부터 창업을 창조경제의 키워드로 강조해 왔다.

 그사이 대한민국 창업 생태계는 얼마나 좋아졌을까. 중앙일보는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5개월에 걸쳐 연령대별로 각기 다른 창업에 나선 4명의 ‘도전자’를 심층 취재했다. 동시에 2013년 9월 ‘창업인식 여론조사’ 이후 2년 만에 창업 여건과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하는 설문(2015년 7월 시행,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 대상)을 실시했다. 결과는 ‘아직 갈 길이 멀다’였다.

 여전히 평범한 개인이 창업을 한다는 건 그물 없이 외줄을 타는 ‘모험’이다. 복잡한 창업 절차, 사각지대 투성이인 정부 지원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장치가 부족하다. 실패에 대한 공포감은 다양한 형태의 창업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되고 있다. ‘창업=골목 식당 개업’이라는 인식도 2년 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지난 7월 ‘창업 하면 어떤 업종이 떠오르나’라는 설문에 응답자 열 명 중 여섯(64.1%)은 요식업이라고 답했다. 2013년(요식업, 64.3%) 설문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정부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창업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체감하는 창업은 여전히 비교적 쉽게 시작할 수 있고 기술의 변화에 덜 민감한 ‘먹는 장사’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반면 ‘창업에 실패하면 쪽박 찰 수 있다’는 말에 ‘매우 동의한다’는 답은 2년 전 42.1%에서 46.5%로 오히려 늘어났다. ‘창업에 성공한 사람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묻는 질문에도 ‘뛰어난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을 것’이란 답은 줄고 ‘운이 좋았을 것’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란 답이 늘어났다. 정부의 창업 촉진 취지가 무색한 대목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청년창업사관학교의 김성환 교장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창업이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실패가 자연스럽고 재기가 당연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심재우(팀장)·구희령·손해용·박수련·이소아·이현택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강정현 기자, 정수경 인턴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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