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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실하는 ‘카리스마 아버지’에 충격 성공해 가족 부양하겠다고 작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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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호 21면

이 대표가 회사 이름을 ‘에이스그룹’으로 지은 것은 대기업이 되겠다는 비전 때문이다. 최정동 기자

대졸자 취업이 힘들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해 명장(名匠)의 길을 걷는 독일식 모델과 대학 졸업 후 입사가 아니라 창업하는 실리콘밸리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학생·학부형이 보기에 아직은 쉽게 내키지 않는 길이다. 에이스그룹의 이종린 대표(37)는 두 모델의 통합형 같은 커리어를 추구했다.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 전기과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다. 야간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창업했다. 2010년 4월에 창립한 그의 회사는 벌써 연매출 900억 규모 중견기업이다. 유럽·북미·아프리카 24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내년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이다.

[나의 삶, 나의 경영] 이종린 에이스그룹 대표

-경영인이 된 경로가 좀 남다르다.
“또래보다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했다. 중3 여름방학 때부터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월급 120만원을 받아서 어머니께 드렸다. 공장장이셨던 아버지께서는 가업을 물려주겠다는 계획을 세우셨기에 대학진학보다는 기술을 배우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 크게 아프신 적이 있는데 어떤 고마운 분께서 병원비를 내주셨다. 평소에 굉장히 무섭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가 그 분에게 굽실굽실하시는 것을 보고 충격 받았다.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을 부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고 다닐 때 자격증 딸 수 있는 것은 다 땄다.”

-고졸은 대기업 취업이 어렵다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
“담임 선생님 추천으로 고2때 LG전자에 입사를 했다. 품질경영팀에서 에어컨에 들어가는 부품을 검사하는 일을 했다. 회사를 다니며 인제대 경영학과(야간)에 입학했다. 모은 돈으로 인제대 앞에 휴대폰 가게를 열었다. 내친김에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와 화원도 열었다. 태풍 매미 때문에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배달 차 두 대가 다 날라갔다. 첫 시련이었다.
부산으로 가 웹디자인 학원, 웹디자인 에이전시, 캘리그래피 학원을 차렸다. 잘 됐다. 29세에 서울로 올라와 휴대폰 액정을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2010년에 창업했다. 2011년 4월 세계 최초로 우레탄 핸드폰 케이스를 만들었는데 출시하자마자 100만개가 팔렸다. 직원 3명으로 시작해 현재 200명까지 늘었다.”

-‘창업보다 수성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창업은 정말 힘들다.
“시대에 맞는 것을 했다. 휴대폰 전성기에 휴대폰 가게를 했고, 홈페이지 제작 수요가 생겼을 때 웹디자인 학원을 만들어 수강생을 많이 끌어들였다. 스마트폰 시대가 개막하자 스마트폰 액세서리 사업에 뛰어 들었다.”

-종잣돈(seed money) 마련도 쉽지 않다.
“회사에서 6년 일하고 적금·퇴직금으로 휴대폰 가게를 차렸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임대매장을 구했다. 창업할 때에는 크게 비용 안 드는 아이템을 잡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근무환경이 좋은 회사로 유명해진 이유는.
“10시까지 출근하고 점심 시간은 두 시간이다. 6시 ‘칼 퇴근’을 보장한다. 사내 카페가 있고 아침에 브런치도 제공한다. 성과에 따라 차도 사주고 월급·직급도 재깍재깍 올려준다. ’사람이 힘이다’가 우리 사훈이다. 사원 개개인을 브랜드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과잉 충성’이 문제다. 창업하겠다는 사원들에게는 창업의 노하우를 알려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좋게 보면 선의의 경쟁인데··· 경쟁하다 보면 동료들과 트러블이 생기고 퇴사하는 경우도 생겨 마음이 아프다.”

-‘칼 퇴근’을 중시하는 이유는.
“창의성이 중요한 업종이다. 늦게까지 일한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 생활도 해야 한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우선 똑똑한 학생들이 엄청나게 많다. 생각만 하지 말고 도전해봤으면 좋겠다. 모든 젊은이들이 창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도 도전하지 않는 게 너무 아깝다. 다만 신문 기사나 책보고 아는 지식인 경우가 많다. 실패하더라도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자기 재산이 된다. 실패를 예상하고 시도조차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단, 아무런 경험 없이 바로 회사를 차릴 수는 없다. 처음 창업해서 ‘대박’ 난 경우는 제 주위에는 없다. 한두 번은 까먹는 게 정상이다. 처음부터 너무 크게 벌렸다 실패하면 재기하기 힘들다.”

-창업형·회사형 인간이 따로 있나.
“그렇다고 생각한다. 리스크를 껴안고 도전하는 사람이 사업가다. 성취 이후 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이 더 행복하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고 도전이 선사하는 추억과 재미를 만끽하려는 사람이 진정한 ‘창업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김환영 기자 kim.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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