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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승, 북한전 … 권중사와 이병장 특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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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정협(左), 권하늘(右)

“현역 군인 신분인 내게 북한전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투나 다름없다.”

 여자축구대표팀 권하늘(27) 중사가 밝힌 북한전 출사표다. 남자대표팀 이정협(24) 병장도 같은 마음이다. 여자대표팀 권하늘은 부산 상무, 남자대표팀 이정협은 상주 상무 소속의 현역 군인이다. 남북 대결을 앞둔 이들의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여자대표팀(2승)은 8일(한국시간) 오후 6시10분 중국 우한에서 북한(2승)과 2015 동아시안컵 3차전을 치른다. 한국 남자대표팀(1승1무)은 9일 오후 6시10분 북한(1승1패)과 3차전을 갖는다. 남녀 모두 최종 상대 북한을 넘어야 동반 우승이 가능하다. 두 경기 모두 JTBC가 단독 생중계한다.

 한국과 북한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엔 ‘북한 선수들이 지면 아오지 탄광에 끌려간다더라’는 말까지 돌았다. 남북은 연장 120분까지 득점 없이 비겨 공동 우승했다. 당시 한국팀 주장을 맡은 김호곤(64)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북한 주장 김종민이 1위 시상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집고 올라갔는데 뒤에 있던 북한 선수가 날 밀어 넘어뜨렸다”고 회상했다.

 30년 넘게 흘렀지만 남북대결은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이다. 지난해 북한과 치른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한국 1-0승)에 출전했던 김승대(24·포항)는 “북한 선수들이 심판이 보지 않을 때 밟고 가거나 ‘축구를 못하게 발목을 담가버리겠다’며 위협까지 했다”고 전했다. 여자대표팀 임선주(25·현대제철)는 “북한은 경기 도중 소리를 지르며 달려든다. 고참 나은심(27)은 동료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욕설까지 퍼붓는다”고 전했다.

 동아시안컵에서 남자팀은 남과 북이 같은 호텔을 쓴다. 한국 선수들은 헬스장에서 우연히 북한 선수들과 마주쳤다. 북한 선수들은 힘을 과시하듯 웃통을 벗고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리기를 반복했다. 이종호(23·전남)는 “북한 선수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는데 나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고 말했다.

 남북 선수들이 항상 으르렁대는 건 아니다. 나은심은 ‘한국 여자팀 조소현(27·현대제철)이 보고 싶어한다’고 전하자 “나도 만나고 싶다. 한 겨레, 한 핏줄로서 통일만 되면 우리는 한 운동장에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전가을(27·현대제철)도 “나은심을 호텔에서 만나면 몰래 인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양보는 없다. 조소현은 “나은심과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면서도 “그래도 경기장에서 승부는 별개”라고 말했다.

 2009년 여자축구 WK리그 부산 상무에 입단한 육군 중사 권하늘은 “현역 군인 신분인 내게 북한전은 전쟁터와 같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2006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수비형 미드필더 권하늘은 북한전에서 한국여자축구 사상 처음으로 센추리 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에 가입한다. 그는 지난해 20년 군 장기복무 자격도 얻었다.

 K리그 부산에서 뛰다 2014년 상무에 입대한 육군 병장 공격수 이정협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영화 ‘연평해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정협은 “내 나이 또래의 젊은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장면을 보고 감정이 북받쳤다. 북한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 우승 트로피를 안고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우한=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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