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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정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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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정호

그들은 틀렸다. 올 시즌에 앞서 닐 헌팅턴 피츠버그 파이리츠 단장은 “강정호는 지난해 한국에서 40홈런을 때렸던 타자다. 파워만큼은 메이저리그 평균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정호(28·피츠버그)는 88경기를 뛰는 동안 홈런 8개를 쳤다. 홈런은 아직까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옳았다. 헌팅턴 단장은 “강정호가 주전을 꿰차기를 바란다. 그는 재능 있는 선수”라고 말했다. 피츠버그가 이적료 500만 달러(약 58억원), 4년 연봉 1100만 달러(약 130억원)를 들여 강정호를 영입한 배경을 설명하면서였다. 강정호는 몸값 이상으로 활약하며 주전선수가 됐다.

 강정호가 내셔널리그 ‘이달의 신인’에 선정됐다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4일(한국시간) 발표했다. 강정호는 7월 25경기에 나와 타율 0.379(87타수 33안타), 출루율 0.443, 장타율 0.621, 홈런 3개, 타점 9개를 기록했다. 한국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이달의 신인상을 수상한 건 2003년 4월 최희섭(당시 시카고 컵스) 이후 두 번째다.

 시즌 전체 성적도 기대 이상이다. 강정호가 현재 성적을 유지하며 다음 주 규정 타석에 진입한다고 가정하면 내셔널리그 타율 15위(0.294), 출루율 12위(0.367), 장타율 26위(0.454)가 된다. 빅리그 어느 팀에서도 중심타선을 맡을 수 있는 성적이다. 홈런을 제외한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이다. 유격수와 3루수를 오가는 수비 또한 안정적이다.

 피츠버그가 강정호를 영입할 때 가장 주목한 점은 ‘파워’였다. 홈런 20개 이상을 때리는 내야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귀하다. 주전 내야진(유격수 조디 머서, 2루수 닐 워커, 3루수 조시 해리슨)이 안정된 피츠버그가 강정호 스카우트에 나섰던 이유는 그의 장타를 기대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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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뚜껑을 열어보니 강정호의 강점은 파워보다 ‘영리함’이었다. 헌팅턴 단장은 최근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와의 인터뷰에서 “강정호는 준비된 타자다. 강정호는 (다른 리그에) 적응하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뛸 때부터 강정호는 공부하는 타자였다. 상대 투수들에 대한 분석자료와 자신의 기억에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해 뛰어난 ‘예측 타격’을 했다. 그는 이동 발인 왼 다리를 크게 들었다가 내딛는 레그킥을 구사한다. 파워를 모으기 수월하지만 구종과 코스 예측이 빗나가면 헛스윙하기 쉬운 동작이다. 미국의 낯선 투수들과 상대하면서 강정호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비디오 분석을 한다.

 강정호의 레그킥은 시즌 전부터 논란이 됐다. 하체 움직임이 크면 시속 150㎞ 이상의 강속구와 140㎞대의 싱커를 던지는 빅리그 투수들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시즌 초 그는 두 가지 자세를 병용했다.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원래 스타일대로 레그킥을 했고, 2스트라이크 이후엔 두 다리를 고정한 채 정교한 타격을 노렸다.

 강정호가 빠른 공을 잘 쳐내자 투수들은 바깥쪽 낮은 변화구를 많이 던졌다. 2스트라이크 이후 강정호가 두 다리를 고정하면 변화구를 노린다고 보고 빠른 공을 뿌렸다. 투수들의 반격에 강정호의 6월 타율은 0.221에 그쳤다. 클린트 허들 피츠버그 감독은 “2스트라이크 이후 무조건 레그킥을 하지 않는 교과서적인 패턴은 상대 투수에게 간파당하기 쉽다”고 조언했다.

 이후 강정호의 타법은 다양해졌다. 볼카운트가 아니라 투수 스타일에 따라 레그킥을 하기도 하고, 두 다리를 땅에 붙인 채 타격을 하기도 한다. 강정호는 지난달 29일 미네소타전 7-7이던 9회 글렌 퍼킨스로부터 1볼-2스트라이크에서 결승 홈런을 날렸다.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레그킥을 이용해 슬라이더를 당겨친 것이다. 상대 투수가 강정호의 패턴을 연구하고 들어와도 강정호는 그때그때 자세를 바꾼다. 그래서 강정호는 트랜스포머(transformer)란 말도 나왔다. 빅리그 데뷔 4개월, 이제는 강정호가 승부를 리드하고 있다.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강정호가 정말 영리하게 타격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폼을 바꾸면서도 타격 밸런스를 유지하는 건 감각이 뛰어나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헌팅턴 단장과 허들 감독이 모두 강정호에 대해 감탄하고 있다. 7월 신인상을 받아 이름을 알렸으니 이제 내셔널리그 신인왕에도 도전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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