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삶과 추억] 속사포 논평, DJ도 못 꺾은 뚝심…'법안 제조기' 별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새정치민주연합 박상천 상임고문이 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77세.

전남 고흥 출신인 고인은 심혈관 질환 등으로 지난해 말부터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3번의 야당 대표(새천년민주당·민주당·통합민주당), 3번의 원내총무(현 원내대표), 김대중 정부 초대 법무장관, 5선(13~16대, 18대)의원….

고인은 화려한 정치경력만큼이나 탁월한 논리 전개와 속사포 같은 단문(短文) 논평으로 유명했다. “국민투표는 쿠테타적 발상"(2003년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국면), “뻐꾸기 같은 신당"(2003년 대통합신당을 향해) 등이 고인이 남긴 어록에 있다.

고인은 DJ의 말을 자르고 의견을 관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소신이 분명하고 주관이 강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1998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 99년 3·1절 특별사면 때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문제가 제기됐다. 그때 DJ는 물론 이희호 여사까지 사면해야한다는 뜻을 전해왔으나 반대해 불발시킨 게 고인이었다. 한 측근은 “고인이 작년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YS도 함께 입원해 있었다. 그때 고인이 직접 YS를 찾아가 '당시 사면에 반대해 미안하다'는 뜻을 밝혔다. 그게 법무부장관 퇴임 후 15년 만에 YS와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다”고 전했다.

고인은 서울대 법대 동기생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함께 여야를 대표하는 명대변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두 사람은 늘 비교대상이었다. 1938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대학은 물론 고시(사시 13회)까지 동기였고, 88년 13대 총선 때 정계에 입문한 것까지 같았다. 97년 대선국면에선 똑같이 원내총무를 지냈으며, 공교롭게 2012년 같은 날 불출마선언을 하며 동시에 정치권에서 퇴장했다. 박희태 전 의장이 2월9일 오전 10시 불출마를 선언하자, 20분 뒤 고인이 ‘나이가 많아져 불출마를 결심했다’며 자발적 명예퇴진을 선언했다. 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 박희태 당시 신한국당 원내총무와 담판을 벌여 대선후보 TV토론도 성사시켰다.

박 전 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실 인간적으로는 그 친구를 별로 안 좋아했다. 공부도 나보다 잘하고…. 자꾸 나보고 머리가 둔하다 캐서…"라고 말했다. ‘영원한 맞수’에 대한 역설적인 애도사였다. 박 전 의장은 곧 “짝 잃은 거위가 된 기분"이라며 " 뛰어난 논리력과 포용력을 갖춘 정치인이었는데 너무 일찍 떠나 마음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고인은 ‘법안제조기’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었다. 지방자치법·통합선거법·안기부법 개정안 등 굵직한 입법 실적이 많아서였다. 최근 야당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15대 국회에서 추진한 인물이기도 하다. 고인은 2000년 당시 국민회의 원내총무 시절 한나라당 이부영 원내총무와 함께 소선거구제와 8개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1인 2표) 도입에 합의했으나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이 반대로 돌아서면서 무산됐다. 하루에 담배 3~4갑을 피울 정도의 애연가로 유명하다.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순천지청장까지 지낸 뒤 DJ에 의해 정계에 입문했다. 유족으로 부인 김금자씨와 딸 박유선(SBS)·민선(제일모직), 아들 태희(SK텔레콤)씨, 사위 김욱준(검사)· 김용철(의사)씨가 있다. 빈소는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12호실(02-2258-5940). 발인은 6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다.

이지상 기자 groun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